송기현의 살림운동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창 16:7~11) 본문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창 16:7~11
창16: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창16: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창16: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아브람과 사래 그리고 하갈, 이 세 사람이 엮어가는 가정사에 대한 한 부분입니다. 평안하던 가정이 세 사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말미암아 복잡하고 뒤죽박죽으로 얽힌 복잡한 가정사가 되게 됩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갈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하여 가던 중에 하란에서 머룰다가 거기서 죽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데라를 이어 갈 사람은 그의 아들 아브람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옮겨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사래가 먼저 나서서 아브람에게 자신의 여종에게 들어가서 자식을 낳도록 했고, 그대로 하지 곧 하갈이 임신을 했습니다.
한갓 미천한 여종이었던 하갈은 여주인도 하지 못한 임신을 하게 되자 여주인이 눈에 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인인 사래를 멸시하게 되었고, 사래는 참다 못해 그간의 사정들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아브람은 사래에게 그의 여종인 하갈의 처분권을 주게 됩니다. 그러자 사래는 자신이 당한 대로 하갈을 학대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갈이 임신한 상태로 집을 나와 광야로 도망하는 가운데, 지쳐 쓰러져 있던 곳, 그곳이 술 길 샘 곁이었습니다. 하갈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찾아오셔서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주신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질문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며 너의 후손을 번성케 하여 하늘의 별을 셀 수 없는 것처럼 너의 후손도 그렇게 되게 하리라"는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15: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아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언약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가졌지만 안달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 인위적으로 이루려했던 우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찾아온 것이 가정의 불화였습니다. 이 불화로 인하여 가장 축복받아야 할 시간에 하갈은 살기 위해서 집을 나와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란게 환경이 변하고 자신의 위상이 조금 바뀌면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교만하여 오만해지고,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갈이 그러했습니다.
광야 술 길 샘 겉에서 방황하고 있던 하갈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8)”고 물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행선지를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아닙니다. 아셔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계획도 이미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10~11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질문을 통해 하갈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질문을 통해 하갈에게 그녀가 가고 있는 인생의 방향을 살펴보도록 하고자, 이러한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지금 하갈에게 주인으로부터 도망하는 일이 바람직 하지 않은 일이며, 또한 그녀가 가고자 하는 길은 바른 길이 아님을 깨우쳐 주심으로써, 그녀로 하여금 바른 길로 돌이키도록 하고자, 이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에 보면 한 나그네가 광야를 지나가다 난데 없이 나타난 사자를 만납니다. 사자는 발톱을 세우고 커다란 입을 벌리고 한 입에 삼킬 듯한 기세로 나그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나그네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을 쳤습니다. 마침 마른 우물을 하나 발견하고, 무섭고 두렵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뛰어 내렸습니다. 한참을 떨어지다 다행히 한 가냘픈 나뭇가지에 ‘덜컥!’ 걸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뭇가지에 겨우 매달린 채,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이번에는, 수많은 독사들이 우물바닥에 뒤엉켜서 우글거렸습니다. 독사들이 머리를 쳐들고서 시뻘건 두 혀를 널름거리며 ‘쉿 쉿’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다시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입에 침을 흘리며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 으르렁’대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주위를 살펴보니까 나무의 잎사귀에 벌들이 꿀을 쳐놓았습니다. 그 지경에 처했음에도 나그네는 혀를 내밀어 꿀을 핥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꿀이 달고 맛있었는지 나그네는, 자기가 처한 위기의 상황도 잊고 연신 ‘아이고, 참 맛있구나!’하며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매달린 손에 힘이 차츰 차츰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슨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우물 벽의 돌담 사이로 검은 쥐와 흰쥐가 교대로 연신 드나들면서 나그네가 의지하고 매달려있는 가냘픈 나뭇가지의 밑동을 갉아먹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운명에 처한 것입니다.
여기 검은 쥐 흰쥐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사는 밤과 낮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한정된 년수에 밤과 낮, 검은 쥐 흰쥐, 드나들 듯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리면, 마침내 매달렸던 가지는 부러지고 인생은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 기막힌 사연이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하갈은 한갓 사막의 고달픈 도망자에 불과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하갈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하셨습니다. 하갈은 그제서야 정신 버쩍들었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는 일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또한 돌아간다고 한들 무슨 일이 기다릴지 모릅니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차라지 죽어버리는 것이 더 쉬운 일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돌아갔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입니다. 새로운 사명을 깨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던 길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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