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눅 24:17) 본문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누가복음 24:17
눅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면서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14절에 보면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그들 곁에 한 사람이 동행으로 따라붙었습니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져서 미처 몰랐으나" 함께 하신 분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다른 말로 하면 "너희들은 무슨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냐?" 물으셨습니다. 너희의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냐? 대화의 내용이 무엇이냐? 물으신 것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의 내용이나 주제가 주로 무엇입니까? 무슨 이야기들을 하십니까?
사회적 거리두기때문에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독백이라도 좋습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내용이나 주제가 무엇입니까? 어쩌면 그 대화가 바로 현재 여러분의 모습이며,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지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서로 주고 받으며 이야기하던 것은 어떤 이야기였습니까?
믿음이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절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 하여 살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다소 퉁명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과 빈 무덤이라는 어리둥절한 소식을 자신들은 총명한 사람들 인양하면서 소개해주었습니다.
엠마오로가던 두 제자들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19절), "그들이 따르던 스승의 죽음과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곧 21~24절 말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 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했습니다.
이들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십자가와 빈무덤의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십자가와 빈 무덤은 부활의 영광을 위하여 거쳐야 할 과정이며 단계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이야깃거리, 대화거리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고 허무를 조장하는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주고 받으며 나누는 이야기가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자기들끼리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할 때 그들은 천하에 가장 불쌍한 자들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터덜 터덜 힘 없이 걷고 있는 가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정작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새로운 복음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이 원하셨던 길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서로 말씀을 주고 받을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25절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풀어주셨습니다. 눅 24:3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라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했는데 생명의 말씀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할 때 가던 길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인생길이 달라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마음이 뜨거워진 제자들은 발걸음을 어디로 돌이켰습니까? 33절을 보겠습니다.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원래 그들은 실망과 절망 가운데 예루살렘으로부터 이십오 리 떨어진 엠마오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시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33절 상반절에 언급되고 있는 '곧'이라는 단어를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주저할 것도 없이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지금 29절에 의하면 날이 다 지나고 저녁이 가까웠음에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날이 새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재빨리 걸치고 신발을 고쳐 신고 지팡이를 굳게 잡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즉시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에게로 향했습니다. 바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 달라진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이 바뀌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남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길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을 사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슬픈 빛을 띠고 내뱉던 깊은 한숨소리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그들이 만난 부활하신 주님을 당당하게 증거 하는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대화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끼어 드시고 관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인격이 바뀌고 품성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인생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실망과 좌절로부터 희망과 기쁨의 사람으로 변화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처럼, 주님을 만남으로 절망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희망의 자리로, 어둠의 자리에서 빛의 자리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자리에서 일어나 능력 있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능력은 변화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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