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이 메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0~17) 본문

예수님의 질문

이 메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0~17)

유앙겔리온 2018. 2. 5. 11:30

13: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3: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3: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3: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3: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3: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3: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수님의 눈을 사롭고 관심을 끄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1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같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였습니다.

 

  18년 동안이나 귀신이 들린 여인의 형편을 성경은 몇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앓으며"했습니다.
  귀신이 들려서 이여인은 앓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리면 신병이 나는 것입니다.
 
  둘째로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는 것입니다.

  귀신이 그 여인에게 들어가 허리를 꼬부라지게 만들고 그 꼬부라진 허리가 펴지지못하도록 잡고 있었습니다.
허리라는 것은 굽혔다 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굽히기도 하고 펴기도 하고 그런데 한번 구버러진 허리가 펴지질 않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나머지는 불을 보듯뻔합니다.
  귀신이 들었고, 그 결과로 앓고 있고 허리가 꼬부라져 펼수가 없으니 생활이 넉넉할 리가 없었을 것이며,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여인을 회당에서 보셨던 것입니다. 그를 보실 때 너무나 불쌍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맑고 밝고 기쁘게 인생을 살지 못하는 여자의 인생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보는 것과 같은 아픔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고생하며 힘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부르셨습니다.
  12, 13절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예수님은 여자를 곧 부르셨습니다. 그 여자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그러자 곧 꼬부라진 허리가 펴졌습니다. 18년 동안 한 번도 허리를 펼 수 없었는데 낫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아름다운 이 땅에 살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프고 힘든 인생의 문제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귀신이 우리를 못살게 해도 귀신을 단번에 쫓아내시는 힘이 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이적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여인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왔기 때문입니다.
에수님은 회당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용케도 이 여인이 예수님이 찾아가 가르치신 그 곳에 그 여인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형편으로 본다면 누가 부른다고 달려갈 형편은 못되었습니다.
소심해지고 부끄러워하게 되고 숨게 되기도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예수께 순종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여인과 전혀 반대로 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회당장과 무리들입니다.
  회당장은 "엿새가 있는데 왜 하필 안식일에 이 여인을 고치느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15~16절에서 "........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고 되질문하시므로서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람을 보고 대하는 관점이 이렇게도 다릅니다.
소나 나귀는 안식일에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면서도
사람이 메이고 묶여서 고통당하는데도 그것을 안식이라고 해서 풀어주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사람이 더 중요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늘 물질이 더 중요한 세상이여서 문제가 되고 불행한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회당장과 그를 편들었던 사람들은 부그러워하였고 무리들은 예수님이 하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했습니다.
17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진 상태에 놓여 있는 여인은오늘 우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가 들어오고 귀신이 들어오고 욕심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 병을 앓게 되고 꼬부라져 펴지못하는 영적 상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그 상태라고 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어떤 것보다도 메인 것을 푸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무슨 다른 의견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이유로도 어떤 핑계로도 이 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예수님의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 생각, 사역의 정신으로 우리의 시선, 생각, 사역을 해야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