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49) 본문

예수님의 질문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49)

유앙겔리온 2018. 1. 24. 11:56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6: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복음서에 산상보훈이나 평지보훈의 결말로 주신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산상에서 그리고 평지에서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리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의 말씀을 "듣는데만 그치는 사람과 듣고 행하는 사람"을 구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이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듣고 행하여 열매맺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듣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신앙의 첫걸음이고 주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첫걸음마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기만 한다고 신앙생활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46절에서도 "너희는 자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 14: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하셨습니다. 사랑은, 진짜 사랑은 그의 사랑하는 이의 말을 신뢰하여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14:21절에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하셨습니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한다면
주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여 그대로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오늘 본문 말씀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47~48절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신앙이야 말로
  탁류로 대변되는 세상과 어둠의 유혹과 그들이 던지는 환난과 역경에서 신앙의 집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길, 무너지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어둠의 유혹도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요동치 않게 되는 것이며 무너지지 않게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49절에서 보는 것처럼 "믿음의 집에 탁류가 부팆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은 공사로 치면 부실공사입니다.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부실하게 건물을 지은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별 차이가 나지 않게 보입니다. 아니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기초공사는 하지 안고 겉모습을 치장하는데 더 많은 비용을 쓴다면 오히려 그  집이 더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날씨는 항상 일정하지만 않습니다. 항상 좋은 날만 계속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것만이 아닙니다. 좋은 날도 있지만 굳은 날도 있습니다. 해와 달고 별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날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평안한 것이 아니라 시련도 고난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진실 여부가 다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의 표는 그의 미사여구나 종교적 외양이나 직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을 실제로 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토록 호소력을 발할 수 있는 까닭도 삶 자체로서 그 행하신 말씀을 직접 증거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되는 것이 어럽고 가르친다는 것이 어러운 것입니다.
 
  미국의 강해 설교자이자 댈러스 신학교 총장이었던 찰스 스윈돌 목사는 어느 주일 설교에서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은 크리스천의 의무인데 특히 교통신호를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배 후 스윈돌 목사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만 신호등이 빨간불임에도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황해 주위를 돌아본 순간 교인들이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스윈돌 목사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얼른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초조해 하고 있는데 얼마 후 몇몇 교인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좀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윈돌은 그들이 따지려는 줄 알고 속으로 무척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잠시 고민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가볍게 점심이나 같이 먹읍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이튿날 점심시간, 스윈돌 목사는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쓰인 종이를 목에 걸고 식당에 들어섭니다. 그 모습을 본 교인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박수를 칩니다. 그러더니 잠시 뒤 다른 글을 적어 스윈돌 목사에게 보여줍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스윈돌 목사님 같은 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은 스윈돌목사님과 같은 일을 행하고 그것을 지적하자 "나의 가르침만 따르고 행하는 것은 따르지 마시오"했다는 웃기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누구를 가르칠려면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든 오늘 말씀은 말과 행위가 일치 하지 않을 수 없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했다고 하면 몰라도 주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우리가 다른 토를 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주여 주여 하는 것도 그렇지 않는 자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정도의 신자가 아닙니다. 듣고 주여 주여 할뿐만 아니라 들은 대로, 주여 주여 한 대로,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신자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하시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가르침이나 교훈보다도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순종의 도를 배워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내가 직면하여 서면 다른 핑계를 댈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사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하신 것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나에게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하고 물으신다면, 주님이 아십니다. 나는 주님이 말씀하시 것을 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