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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의 비유(막 13:32~37) 본문

비유의 복음

문지기의 비유(막 13:32~37)

유앙겔리온 2012. 6. 15. 10:14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문지기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신앙인의 케릭터, 신앙인의 이미지 중에 하나는 "문지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잠을 자듯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는 존재, 곧 기다리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충실히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이 없으면 구원 기회를 놓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의 문 앞에 오시어 고요를 깨울 것입니다.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인만을 고대하는 신앙 태도를 당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큰 집의 주인이 먼나라로 정해지지 않은 시간 동안을 떠나 있기 위하여 종들에게 각 각 임무를 맡겨줍니다. 그런데 여러 종들에게 각 각의 임무를 주면서 문지기에게는 좀 다른 명령이 추가됩니다. 그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지기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들은 다 졸아도 되지만 문지기는 졸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문지기의 근무 시간은 밤중이기 때문입니다. 문지기가 졸면 주인의 소유재산을 도적에게 도적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건물이 좋아도, 아무리 성이 튼튼해도 지키는 문지기가 졸고 있다면 뚫리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문지기의 사명이 중요합니다. 문지기는 다른 종들이 잠들어 있을지라도 그만큼은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졸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따라 졸았습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지기의 사명은 깨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깨어 있는 문지기 비유를 다음과 같이 발전시키고 변형을 시키시고 있습니다. 문지기가 졸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주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문지기 비유에서 재산을 지키는 문지기를 집 주인의 오심을 준비하는 문지기로 강조점을 바꾸고 있습니다. 35절에 보면 그 주인이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알지 못할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문지기는 밤에도 깨어 있으면서 행여 돌아올 집주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문지기는 집주인이 언제 올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문지기에게 엄히 경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인이 집에 돌아왔을 때에 "저희의 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졸고 있는 문지기를 보게 된다면 문지기의 자리는 위태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문지기의 생업은 잘리게 될수도 있습니다. 문지기는 졸지 않고 재산을 약탈하기 위해서 집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막아야 합니다. 문지기는 졸지 않고 악한 사람과 해를 끼치는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졸지 않고 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밖에 세워두지 않고 영접해야 합니다. 주인을 문 밖에 세워두는 실수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주인처럼 제자들에게 기대하신 것도 깨어 있는 것이지 잠을 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힘겹게 기도하실 때도 제자들이 자신과 함께 깨어 있어 주길 바라셨지만 그들은 잠에 빠졌습니다.(14,32-­42) 결국 제자들은 앞으로 닥칠 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37절에는 이것이 당시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뿐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신앙의 문지기입니다.
  깨어있는 문지기와 같은 성도는 예배해야 할 때 예배하는 자리에 있는 성도입니다. 예배가 살면 내가 사는 것이고 예배가 죽으면 내가 죽는 것입니다. 예배가 살아나려면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예배에 올인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눈에 어른거려서 하나님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예배에 올인하는 성도가 깨어 있는 성도입니다. 예배를 빼앗기지 않는 성도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는 기도하는 성도입니다. 눅21:36,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하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이고 깨어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2.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지기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문지기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하셨고, 잠 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하셨으며, 잠 28: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세상의 온갖 더럽고 악한 것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마음의 성문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음에 들어오려고 문 앞에 서 있는 모든 생각에 대해, 그것이 우리에게 속한 생각인지, 유익한지 해로운지를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생각인지 오염된 세상에 안주하려는 생각인지는 깨어 있어야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깨어 기다리는 자에게는 종말이 희망의 시간입니다. 주인을 맞을 생각에 설레어 잠이 오지 않습니다.

 

    3. 가정의 문지기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가정은 성소입니다. 성소가 더렵혀지면 안됩니다. 엘리 제사장 처럼 하면 안 됩니다(삼상 2:27-36, 3:13-14).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통해서든 우리 가정에 우상적인 것, 세상적인 것, 인간적인 것, 육신적인 것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4. 교회의 문지기 직분을 잘 감당행야 한다
   지역교회도 하나의 성과 같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문이 되고 또 우리는 그 문의 문지기와 같습니다. 문지기는 주변에 신경을 쓰지 말고 오직 자기가 맡은 구역에 온 시선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다른 문지기들이 아무리 문을 잘 지켜도 어느 한 문지기가 자기 임무를 소홀히 하면 그 문으로 위험이 들어오거나 잘못된 것이 들어와서 자기도 해를 입고 다른 사람들도 해를 입게 됩니다.
 
  주인이 와서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36절,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하셨습니다.  우리는 깨어있으라고 명령받은 '문지기'입니다. 주인이 언제 오실는지 알 수 없지만 예상치 못한 시간에 다시 오시기에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주인이 없을 때의 모든 삶의 태도와 행위가 주인이 함께 있을 때처럼 성실한 삶의 모습을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요나서를 통해서 요나가 다시스 행 배 밑층에 내려가서 풍랑이 대작하는 상황에서 잠을 자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요나 선지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니느웨 성인데 요나는 다시스 행 배 밑층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불성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는 가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문 앞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