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요나의 표적(마 12:38~42) 본문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특히하게 요나서 전체를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요나서는 세상 죄를 대속하여 죽고 무덤에 갖쳤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구약속의 신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구약시대에 대표적인 민족주의자에 속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이방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 가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배가 풍랑으로 인해서 위태할 때쯤 제비뽑기에서 풍랑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바다로 던져지고 큰 물고기에게 삼킴을 당하나 3일만에 다시 구원을 얻고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했더니 니느웨의 왕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요나서의 내용입니다.
이 요나의 사건을 예수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고, 그리고 요나의 일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나의 사건을 자신의 비유의 재료로 삼으시고 비유의 복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냥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소서"라고 했지만 누가복음에 보면 "하늘로부터의 표적을 보여주소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보여 줄 표적이 있다면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이 사건이야말로 가장 귀한 기적입니다.
사실은 예수님은 이미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느시는 표적, 오천명을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먹이신 일, 귀신이 나가는 표적, 장님이 눈을 뜨는 표적, 벙어리가 말을 하는 표적 등등 많은 표적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으로부터 문을 닫고 있는 사람들은 그 많은 표적을 가지고도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운 사람은 아무리 큰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꾸 별란 표적을 보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작은 표적을 보고도 깨달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깨닫고, 기도를 하면서 깨닫고, 설교를 들으면서 깨닫고, 찬송을 하면서 깨닫습니다. 문제는 자기의 영적 상태가 문제가 있는 것을 모르고 자꾸만 표적만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 한번 안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한 것이 믿기 위한 것이 아니라 또다른 시비를 걸기 위함이었던 것임을 예수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비판적이고 시비를 걸고자 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통하지를 않습니다. 시간 낭비일뿐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술취한 사람과 다투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 소리 또하고 한 소리 또하고 대화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술깰 때까지 버려두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치 술취한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반예수적인 술에 취하여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에게서 허물을 찾아내고 예수를 잡을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탄식하는 말씀으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낮밤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만에 살아나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지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만에 다시 나오고서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지금 유대백성들도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고 전하신 많은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는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을 보고서야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그 행하신 표적들이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임을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고도 끝까지 의심했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길을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영적인 눈이 떠져서 깨닫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바닷가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고서 깨닫게 되었고, 좌우지간에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그 표적을 보고서야 그들은 소명을 재확인하게 되었고 그 사명을 회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이 어둡기 때문에 자꾸 큰 것, 더 많은 표적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밝은 사람들은 작은 경험과 작은 표적을 보고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은혜를 받고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보면 요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과 그리고 남방의 시바의 여왕이 심판날에 너희보다 낳을 것이며 저들이 저희를 정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니느웨백성들은 이사야도 아니고 엘이야나 엘리사도 아니고 성경에 나온 위대한 선지자들도 아닌 이름없는 요나가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도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다 회개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방시바의 여왕은 먼곳에서부터 직접 솔로몬을 찾아와서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 앞에는 요나보다 더 큰 이, 솔로몬 보다 더 큰 이가 와서 복음을 전하고 표적을보여주어도 너희가 도무지 믿지를 않는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일하셔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았고,
많은 표적을 보았지만 더 큰 표적만 구했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표적은 충만합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서도 신비로움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표적을 보고 좋은 신앙적인 경험을 하여도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눈을 떠야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표적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며 또한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서 장사가 되어 삼일만에 무덤에서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이 표적이 주님의 보여주실 마지막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하면 그는 영적인 회복 불가능한 장님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서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삼일만에 부활을 하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큰 표적인 줄 알고 다른 표적을 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표적이 깨달아지고 이 표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범사 가운데서 영안이 열려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님의 표적을 보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보다 크고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요, 그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요나의 전도를 듣고도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남방 여왕은 온갖 보물을 싣고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요나보다 크신 이의 전도를 받고도 회개치 않고, 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심판 때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에게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복음을 들을 때 니느웨 사람들과 같이 말씀을 듣고 속히 회개하고, 남방 여왕의 열심과 드린 예물보다 더한 사모함과 겸손함으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심령을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는 요나보다 크신 이시요 솔로몬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의 하신 일을 보고 회개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것보다 더 큰 표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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