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누가복음 16:19~31) 본문

비유의 복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누가복음 16:19~31)

유앙겔리온 2011. 5. 4. 18:52

  예수님의 비유의 특징 중의 하나는 두 극단을 대비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 오른쪽과 왼쪽, 무너지지 않는 집과 무너지는 집, 좋은이웃과 나쁜 이웃, 알곡과 가라지 등등.............
오늘 비유도 보면 호사스럽기 그지 없는 부자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이며 제 발로 걸어다니며 구걸조차도 할 수 없는 그런 거지 중에서도 거지인 나사로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혼동을 불허합니다. 가장 저급한 지혜로도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지나치리만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매모호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거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쾌합니다. 예면 예고 아니면 아니요입니다. 차든지 덥든지하라는 말씀 그대로 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그래야 합니다. 주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1. 부자의 쾌락제일주의 삶
  19절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하는데"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많은 재물 때문에 미혹되어 자신을 망쳤습니다.
부자의 가치관은 세상에서 좋은옷입고 좋은 음식먹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믿음이고 하늘이고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다인 사람, 이 세상뿐인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세상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2. 자기만을 위한 삶-의무를 다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20-21절을 보면 "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라고 했습니다.
  부자의 부요함 속에는 가난한 자의 몫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건강한 자의 건강함 속에는 병든자의 몫도 들어 있습니다. 지혜로운자와 지식 있는 자 속에는 그렇지 못한 자의 몫도 들어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해서 다 내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아보지 않았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남을 유익하게" 이것을 모토로, 삶의 목적, 신아으이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3. 부자의 종말
  이제 본문은 지옥에 간 부자의 형편을 소상하게 이야기 합니다.
부자의 문간에서 불쌍하게 살던 거지는 천국에 갔고 날마다 호의호식하며 살던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의 고통가운데서 부자는 저 멀리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나사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견딜 수 없는 고통가운데서 아브라함에게 애걸하기를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적셔주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죽지도 못하는 불 속에서 견딜 수 없이 괴로워서 그렇게 간청했지만 그 간청은 거절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사로를 세상으로 보내어 세상에 살고 있는 자기의 다섯 형제에게 자기처럼 살다가 이런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은 믿지 않아도 만일 죽었던 자가 살아서 돌아와 이야기 하면 믿고 회개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31절에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은 듣지 않을지라도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믿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인데,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왜 간증집회가 유행합니까? 간증도 아주 극적인 간증, 죽었다가 살아낫다고 하는 간증을 들으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성경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고 초자연적인 기적 같은 것을 믿는 신앙은 그 특징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경건과 윤리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지만 초자연적인 이적은 우리를 점점 자기중심적인 것만 추구하게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부자와 그의 다섯 형제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선지자에게 들으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혹시 지금 부자이거나 또는 앞으로 부자가 되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오늘 성경에 나오는 부자와 같이는 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풍성한 재물은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창세기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거부였습니다. 야곱도 거부가 되었습니다. 요셉도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귀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죄의 원인이 풍성한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을 사용하는 행위에 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이 거지됨을 25절에서 아브라함의 입을 빌려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지가 거지된 것은 거지 책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정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거지는 자기가 게을러서 거지가 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질병이라든지 다른 어떤 문제 때문에 부를 축적할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부를 축적하지 못한 것처럼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5. 주의 사항
   그렇다고 부자는 다 나쁜 거라든지 거지는 다 천국간다는 생각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결코 부자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역시 가난한 자를 두둔하거나 칭찬하고도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막연히 부자에 대한 경멸과 증오와 죄인시와 적대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