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어리석은 농부의 비유(누가복음 12:13~21) 본문
오늘 성경에 보면 물질 때문에 형제간에 커다란 문제가 생겨서 서로 원수관계 갈등관계에 있는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아마도 다른 방법과 수단을 통해서 해결해 보려고 해보았지만 여의치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였는지 형제간에 재산 분배가 명확하게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형은 2/3를, 동생은 1/3을 가지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 규정을 지키지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이 청년과 거기 함께 있는 여러 사람들을 교훈해 주셨습니다.
1. 탐심에 빠진 자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탐심이라는 것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동생이 나와서 형을 고발했을 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동생을 동정하거나 정의감을 가지고 내가 되찾아주겠다 하시지 않으셨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자신 앞에 나와 형을 고발하는 동생의 마음속에도, 동생의 몫을 가로챈 형 못지않은 '탐심'이라는 내적인 죄악이 존재하고 있음을 간파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탐심'이 부자들의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탐심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형뿐 아니라 동생에게도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기본생활필수품의 소유를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마 6:32, 딤전 6:17). 성경은 가난을 미덕이라거나, 물질적인 부를 창출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삶은 분명히 경계합니다. 기독교적 재물관은 누가 물질의 주인인가에서 출발하여 나아가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관리하는 삶을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탐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망각하므로 자기가 주인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탐심을 멀리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경계하신 것은 물질의 무한한 증식이 곧 풍족한 삶이라는 생각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2.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 대신 물질에다 연관시키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명의 본질이 그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 15절에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사람의 영혼과 생명과 행복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되거나 물질이 있고 없고에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도 보면 이 부자가 하는 말 중에 "내 곡식, 내 헛간, 내 곡식, 내 물건, 내 생명, 내 영혼" 이런 식으로 자기 이기주의 빠져 있는 사람은 결국 망하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말씀을 통해서 소유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께 드릴 줄 모르는 사람, 사람과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것으로 용의주도한 계획으로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올 한 해 동안에 미국에서는 토네이도라는 회오리 바람이 수차례 닥쳐서 인간들이 용의주도하게 설계하고 만들어 놓은 도로 집 자동차 정원 갖가지 문명들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이 우주만물은 인간의 용의주도한 계획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으로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부요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가난한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알아야 합니다.
5. 나의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는 줄을 모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간증을 하는 것을 들어보았는데 자기가 집을 3채를 지었는데 그 3채의 집에서 결국은 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어서 우리의 예비한 것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죽은 후에 우리가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습니까?
6.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음을 떠나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에 대해서는 쌓아두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쌓아둔 것이 없는 사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사람 바로 이사람이야 말로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벌벌 떠는 사람이 되어서는 않되겠습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을 내 쓸것 다 쓰고 남은 것으로 할련다하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찌거기는 원치 아니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업은 항상 가난하고 하나님의 교회도 여전히 가난뱅이인 것입니다.
어쩌다가 부스러기 돈 좀 생기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하고 어쩌다가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그 때가서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대하여는 가난한 자일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라도 하나님이 원하시고 내 마음이 움직이면 한쪽 뚝 떼서 하나님꼐 드릴 수 있는 성도가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업이 가난을 면할 수 있고 하나님의 교회가 가난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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