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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강보

유앙겔리온 2010. 12. 18. 21:50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작은 조각의 보자기 즉 강보가 사용되었습니다. 눅 2:11~14절 중에 예수님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강보'라는 말에 사용된 헬라어 sparganon<스팔가논>은 '작은 조각', '작은 조각으로 묶거나 싸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 최초로 사용하셨을 이 작은 천 조각인 강보, 즉 보자기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보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생활도구 중에 하나였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손자손녀에게 주려는 사랑으로 꾸린 선물 꾸러미에서부터 시작해서 나라의 임금에게 바칠 진상품까지 우리 선조들은 무엇이든지 보자기에 싸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친숙하게 사용해 왔던 강보. 즉 보자기는 서구문명과는 다르게 우리 민족의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공간 경제(空間 經濟)가 담겨있습니다. 펼쳐서 쓰고 난 뒤 다시 접어버리면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보자기는 사용하던 사용하지 않던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박스나 가방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리고 박스나 가방같은 것들은 일정 용량밖에 넣지 못하기 때문에 싸이즈 별로 모양 따라 여러 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보자기는 내용물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그때그때 묶는 것으로 조절하면 됩니다. 거기다가 끈이라도 사용하게 되면 손바닥만한 보자기로도 집을 덮을 수도 있습니다.  또 내용물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던 용도가 무엇이든지 관계없이 보자기 자체가 내용물의 모양을 따라 자신을 바꿉니다. 상대를 결코 탓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 보자기의 변신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보자기는 이렇게 쓰면 이것이 되고 저렇게 쓰면 저것이 됩니다. 보자기는 자기 변신의 귀재입니다. 책을 싸서 어깨에 매면 책보가 되고, 횃대에 걸쳐놓으면 횃댓보가 되고,  늦게 귀가하는 가족의 밥상을 덮으면 밥상보가 됩니다. 보자기를 꼬아 머리 위에 얹으면 똬리가 되고, 이마에 두르면 머릿수건이 되며, 얼굴을 가리면 무릅께(처네)가 되고, 목에 두르면 목도리, 허리에 두르면 허리띠가 되며, 등에 두르면 포대기, 배에 두르면 앞치마, 손에 들면 손수건이 됩니다. 추울 때 시린곳을 두르면 보온용 워머가 됩니다. 이런 다목적의 생활 용품이 이 세상 어떤 다른 나라에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 민족은 보자기 뿐 아니라 다른 생활도구에서도 공간 경제를 잘 활용했습니다. 먹고 난 밥상은 상다리를 접어서 시렁 위에 얹어둠으로써 식사 공간을 원점으로 환원시켜놓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펼쳐놓은 식탁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공간을 점령당합니다. 잠자리도 그렇습니다. 자고 나면 이불, 요를 접어 다락 속에 넣어둠으로써 잠자리를 환원시키는데 침대는 지속적으로 공간을 낭비합니다. 방석이나 돗자리도 손님이 가고 나면 걷어 치움으로써 공간 절약을 하는데 의자는 손님이 가건 오건 버티고 있습니다. 병풍도 쓰고 나면 접어버리고 부채도 부치고 나면 접어 버림으로써 무용(無用)의 공간을 절약합니다. 그래서 옛날 한옥에는 이런 공간 활용을 위해서 시렁이 방마다 있었고 다락이 이곳 저곳에 있었습니다. 중천장을 하지 않는 집의 대들보마저도 이것 저것을 올려놓는 좋은 물품보관장소였고 대청이나 마루 밑는 온갖 농구기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보관했습니다. 심지어 그곳은 몇 마리의 짐승쯤은 살림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한옥은 공간경제의 결정체였습니다. 아무리 물건들이 많아도 집을 키우지 않고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주가 서구화 되면서 우리의 생활도구나 가구들은 쓰지 않을 때도 그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서는 떡하니 버티고 자기 자리를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리함과 안락함 때문에 멈추지 못하고 자꾸만 가지 수가 늘어나고 크기가 커지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택 공간을 점점 더 침식하게 되고 아무리 큰 집도 이것저것 편리한 생활도구들을 구입해 진열하다보면 결국은 비좁게 되고 맙니다. 그러다보니 씀씀이는 더욱 커지고 결국 이런 것에 가정경제가 발목을 잡히고 나중에는 국가경제까지 문제가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강보에 싸인 예수님의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강보가 가지고 있는 공간경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구를 최소화 하고 생활도구를 최소화한다면 그렇게 큰 집이 필요없을 것이고 집을 넒히는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고 타인과 나누는 삶을 사는 것도 가능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탄의 메시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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