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손만 씻은 사람(마 27:22~26) 본문
손만 씻은 사람
마 27:22~26
마27: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마27: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마27: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27: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27: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우리 몸에 세균 한 마리가 들어오면 3 시간 정도가 지나면 약 26 만 마리로 늘어날 정도로 세균 번식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바이러스에 제일 취약한 부위가 바로 우리의 손입니다. 외부로 부터 노출되기도 쉽고, 오염이 가장 쉽게 되는 부위도 바로 손입니다.
의사들 중에 어떤 의사는 "손만 깨끗이 잘 씻어도 각종 질병의 70% 이상이나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손 씻기도 우리 손에 묻은 병균이 없어지고, 더럽혀진 손은 깨끗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마음까지는 깨끗이 씻어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손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자주 손을 씻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병균을 옮기는 손이 되지 않도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손을 아무리 씻어도 죄를 없이 하는 것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으로 상대할 사람은 '손만 씻은 사람'인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손만 씻었지 마음은 씻지 못한 대표적인 면피의 사람이며 후안무치의 사람이며 이벤트와 퍼포먼스의 사람입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 본디오 빌라도일 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면서 그가 무죄임을 거듭 거듭 확인하고 확증합니다. 오늘 본문말씀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에 보면 3번씩이나 "예수님에게서는 죄를 찾지 못했다"고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이렇게 세번씩이나 예수님을 심문하고서는 죄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의 아내의 권면도 받은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으로서의 판결을 미루며,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보고자 하지만 문제는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했다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마 27:24a).라고 했습니다. 민란를 자초할만 저항이었고 위협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란이 나려고 하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를 소리치는 무리들 앞에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는 포퍼먼스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손을 씻었습니다. '손을 씻는다'는 것은 예수에게는 죄가 없다는 표현이며, 자기는 재판관이기는 하지만 자기는 이 일에 무죄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죄책감을 씻어낸 것입니다. 빌리도는 자신의 손을 씻음으로써 자신은 이 일에 대하여 죄가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시편 26:6에는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라고 한 구절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 성경구절을 알아서 성경대로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유대인의 관습을 알았을 것이고 당시의 두루 알려진 관습 중에 하나가 성전에서 두로 다니며 무엇을 하려면 먼저 손을 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관습대로 손만 씻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무죄하기 때문에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다닐 권리도 있습니다. 손만 씻었다고 주의 제단에 다닐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빌라도는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합니다. 이 말에 "나는 무죄하니"라는 말은 '책임회피'일 뿐이지 그의 죄가 없어지지 않았음은 당연지사입니다.
이는 자신의 잘못된 판결에 대하여 손을 씻음으로 자신이 깨끗하다는 자기의지를 나타낸 것에 불과합니다. 즉 자신이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중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무고한 피에 대하여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답변하며 예수의 피를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마 27:25절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자신의 양심적인 내면의 소리보다도 무리들이 모여 밖으로부터 내지르는 소리가 더 크고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손을 씻고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판결을 하고 맙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자신이 저지른 죄는 그대로 두고서는 손을 씻는데 급급했습니다. 내면의 죄는 그대로 놓아둔체 손만 씻고 물기를 닦아내서는 나는 죄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만을 씻는 형식적 신앙, 외형적 신앙은 바리새인들서기관들의 전매특허품입니다. 이런 외형적이며 형식적인 그들의 신앙을 예수님은 깊이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그것을 그대로 채용했습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좋은 것을 배워야 하는데 나쁜 것만 배운 것입니다.
이들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는 배치되고 대치되는 이들이었습니다.
잔꾀만 부리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꾀만 부렸습니다. 물로 손만 씼었습니다.
잔꾀를 부려 손만을 씻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을 씼었으면 재판을 번복했어야 합니다. 손을 씻었으면 이것은 내 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는 손을 씻고서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나는 여기서 빼달라는 것입니다.
여기 "너희가 당하라"는 말은 책임전가입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아담이 범죄 후에 하와에게, 하와가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책임전가는 죄인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빌라도가 손을 씻고 던진 말은 자신은 이편저편도 아닌 객관적 중립적으로 결백한 사람이라는 제스처이며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가 손만 씻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에 손을 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에 손을 담근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비굴한 사람이었고, 책임회피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고 사도신경을 통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계속해서 오고 오는 세대에 의해서 책임추궁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본디오 빌라도가 세숫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슬적 집어넣고 씻는 것 불과하다면 본디오 빌라도와 우리가 다를게 무엇이겠습니까?
빌라도가 손을 씻는다고 죄를 씻을 수 있는 것 아니고, 죄인들이 손을 씻었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잠시 마음을 씻는다고 우리의 할 일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의 종려주일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숫대야에 슬쩍 손이나 씻고 가는 빌라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빌라도는 손을 씻기전에 다른 판결, 다른 결정을 했어야 했습니다. 손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어야 했습니다. 설혹 손을 씻는 사람이었다면 손을 씻어 면피의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손을 씻었다면 재판을 번복했어야 했습니다. 내게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잘못된 재판을 했는데 손을 씻음과 함께 재판의 잘못됨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것을 고치는 일이 뒤따라야 합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예배하는 우리들은 '예배했다'는 자기만족과 위로가 아닌 우리의 마음과 삶이 변화해야 합니다. 씻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변화가 핵심이며 성화가 관건입니다. 손을 씻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바뀌어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것으로 살아내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본디오 빌라도를 통해서 받아야 할 교훈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