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자족하면 행복해집니다. 본문

환경살리기

자족하면 행복해집니다.

유앙겔리온 2009. 6. 6. 18:40

제목 : 자족하면 행복해집니다.
본문 : 빌립보서 4:11~13

일시 : 2008년 환경주일

 

  큰집을 보면 "저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차가 지나가면 "저 차를 타고가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출세했다네 누구 자식은 잘 되었다네" 하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들이나 그들의 가정은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상상을 합니다. 그러나 그처럼 살림살이가 좀 좋아졌다고, 결과가 나아졌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환경이 좋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소유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마음과 육체는 병들기 쉽고 불행하게 됩니다.

 

  언젠가 행복지수를 조사했는데 물질적 소유가 넉넉하고 환경의 조건이 좋은 선진국들인 미국 스위스 독일 캐나다 일본 호주 등은 최하위권에 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 감사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자족하며 감사하는 민족과 나라들은 모든 것이 부족한 후진국이여도 행복지수만큼은 최상위권에 속하였습니다. 돈이 있어서 불행해진다면 돈 없이 행복해지는 것을 선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선진국을 꿈꾸고 있고 선진국의 국민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꿈꾸고 소망하면 반드시 선진국은 될 것입니다. 꿈대로 되고 비전대로 됩니다. 그런데 그 선진국에는 선진국증후군이란 것이 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만 소개하면, 선진국에는 "상대적 빈곤감이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못가져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가진 사람들을 인해서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빈곤감에 빠지면 내가 하지 않아도 되고 소유하지 않아도 될 것 까지 하게 되고 소유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나는 못한다는 상대적 빈곤감, 왕따당하는 느낌이 가장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 느낌이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족함을 배워야 합니다. 상대적 빈곤감이란 이 악마를 물리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나만 못해서 왕따당하는 느낌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비교의식을 잘라내버려야 합니다.

  상대적 빈곤감을 부추기고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 현대 선진국적 사탄의 정체입니다.

  행복은 내게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에 자족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 있는 것에 대한 감사로 변할 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것에 대해서 자족하고, 작은 것이라도 내 삶에 채워주는 조건이 있다면 감사하며 사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분명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즐겁기 때문에 웃기도 하지만 웃기 때문에 즐거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감사하고 기뻐하고 웃고 미소짓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11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인생을 살아가는 생활원칙은 '자족하는 생활'입니다. 자족한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꿈이나 성취동기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자족하는 생활은 말 그대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좌우되지 않고 예속되거나 지배받지 않고, 어떤 생활 형편에 처하든지 늘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삶의 형편에 처하든지 절제하고 검소하게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 더 편해지고자 하는 욕심, 더 높임을 받고자 하는 욕심, 사람들에게 한없이 계속되는 욕심이 있습니다만 자족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욕심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사람의 욕심은 너무 높아 커트라인이 없는데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사람은 어느 하나를 간절히 원하다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을 원하고 더 많이 바라다가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욕심과 감사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소속이 다른 것입니다. 욕심은 사탄에게 속하여 있고 감사는 하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일순간에 불평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욕심입니다. 이처럼 다른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결코 종이 되지 않습니다. 항상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탐하지 않는 물건은 세상이 그 물건에 대해 아무리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할지라도 내게는 무용지물입니다. 명품에 욕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명품만 보면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심지어는 명품 가방을 가지고 싶어서 몸을 파는 여자도 있습니다. 제 눈에는 물건살 때 담아가라고 그냥주는 경품가방이나 몇십만원 몇백만원 하는 가방이나 다를바가 없고 오히려 경품가방이 더 좋게 보입니다. 왜요? 명품 가방에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래 뭘 들고 다니는 것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욕심만 죽이면, 어떤 유혹도 힘을 잃어 버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만이 많아지고, 미끼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탐욕스런 사람은 가장 약한 사람입니다. 욕심이 없어야 장애가 없습니다. 시험이 없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했습니다.
 
  여러분, 아마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일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치 않고 자족치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유도 없고 평안도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소유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그것이 바로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생활 형편에 처하든지 스스로 만족하면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절제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만족해 하고 자유와 평안을 누리면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기회를 잃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면 많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욕심에 눈이 멀면 기회를 잃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여러 가지 형편에 처하면서도 자족하는 삶을 살수가 있었을까요?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기질이나 성품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그 비결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12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했고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적응하고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는데 그 비결은 딱 한가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자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은 발견했습니다.

  자족은 배우는 것입니다. 훈련하는 것입니다.
감사도 배우는 것이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감사하는 사람이 없고 자족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배움이 있을 뿐입니다.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매우 다양한 환경속에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어느 환경에 살던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했습니다.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처한 환경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의 지배나 환경의 지배에 예속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만 지배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께만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만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만 의지하니까 부한 환경에 처해도, 가난한 환경에 처해도 나머지의 다른 환경은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힘만을 받았습니다.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해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물질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을 가지고 그 힘으로 무슨 일을 해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급하시는 힘을 가지고 사역을 하고 주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부한 환경에 처해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 심지어는 감옥의 죄수가 되는 형편에서도 총독과 백부장 같은 높은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형편과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거기에 좌우되지 않고 어떤 형편에서든지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족할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오늘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때에 어떻게 하면 자족하는 삶을 살수가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자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주 안에서 자족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자족하는 삶을 실천해야 되겠습니다. 절제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불편을 감수하고 인내하는 훈련을 해야겠습니다. 작은 감사가 큰 행복을 가져옵니다. 행복에는 절대 기준이 없습니다. 어느 수준이 되어야 행복하고 불행한 것인지 정답이 없습니다. 행복에는 교과서나 참고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이나 모범답안이 있는 것도 압니다. 행복은 다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족, 스스로 족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행복인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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