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오직 나를 위하여(히 10:5~10) 본문
오직 나를 위하여
히 10:5~10
히10: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10: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히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히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히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히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늘은 대림절 네 번째주일로서,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제는 사랑입니다. ㅂ“사랑”은 대림절의 절정이자, 성탄의 본질을 드러내는 주제입니다. 대림절의 기다림을 사랑으로 완성합니다.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오직 나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오직 나를 위해서" 하신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를 위하여,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육신으로 보내신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5절 끝부분에 주께서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사랑의 선택입니다.
율법을 먼저 주셨으나 율법에 따른 구약의 제사는 사람을 온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해주셨는데 그분이 바로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나를 위하여 나와 같은 몸을 입고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뭐 대단한 존재이랴”하겠지만 "오직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낮아지게 하셨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랍고도 큰 하나님의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나를 위한 그 사랑,
내 힘으로가 아닌, 내 능력으로가 아닌 나를 위한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보내주신 그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도저히 거룩과는 거리가 먼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그리고 그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오직 나를 위하여" 온전히 동의하시고 순종하신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오직 나를 위하여 세우신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을 그분이 거절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7절 끝부분과 9절 중간 부분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왔나이다"했습니다. 도저히 아버지의 뜻에 동의하기가 어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의하고 순종하셨습니다.
겟네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십자가의 잔을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직 나를 위하여" 자신의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동정녀 탄생으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구세주 예수로 하늘에 속한 분이 땅의 사람으로 오실 그 때도 이런 치열한 아버지와 아들의 밀땅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동의하셨고 순종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동의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육신을 입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아버지의 보내심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으며,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심으로 우리에게 거룩함과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오셨던 주님께서 오직 나를 위해서 행해주신 사랑이고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동의하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자기 주장이 앞서게 되고 아버지의 뜻에는 숨고 도망치기 바쁘게 됩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 앞에 순종하신 것 같이 우리도 오직 주님을 위하여 순종할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오직 나를 위하여 그렇게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뜻을 동의하고 순종하고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 사랑을 기억하고 내 뜻을 고집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동의하고 순복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주님께서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요6:38-40절에 밝혀주셨습니다.
요 6:38~4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며, 그런 사람들은 하나도 잃어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0절에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소나 양의 제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서, 오직 나를 위해서” 주님이 오셔서 단번에 보혈을 흘려주셨기에 된 것입니다.
예수의 사랑은 단번에, 완전하게, 영원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과 희생을 본받아 하나님 뜻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도록 도전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나를 위해서 이와 같은 큰 희생을 치루어 주셨는데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인 것을 잊지 말고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