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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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서(행 14:19~28)

유앙겔리온 2025. 2. 6. 19:43

돌아가서
행 14:19~28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행14: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행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행14: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행14: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행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행14: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행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큰환란을 당합니다. 그 환난의 경험은 다시는 반복해서 경험하고 싶지 않는 것이었을 겁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바울과 충돌했던 유대인들이 바울사도가 전도하고 있던 루스드라까지 뒤쫓아왔습니다. 두 사도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과 분노가 식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루스드라까지 두 사도를 찾아서 방해하려고 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루스드라에 와서 무리를 선전선동으로 충동질하였습니다. 그들은 선전선동과 충돌질의 선수였습니다. 그들에게서 충동을 받은 무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자신이 행한 기적을 보고 자신에게 환호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돌변해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내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바울은 하나님의 지켜주심 때문에 죽지는 않았습니다. 죽지 않았다고해서 바울의 형편이 좋았으리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을 돌로 공격하던 사람들이 그가 죽은 줄 알만큼이었다면 바울의 상태는 정말 심각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의 사명은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의 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아니하고 전진합니다.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다행스럽게 더베에서는 큰 반대와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게 되었습니다

  더베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마친 바울은 자신이 파송받은 안디옥으로 되돌아 가는 길에, 그가 복음을 전했던 곳, 돌로 맞아 죽을 뻔 했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재방문하였습니다. 

  이곳들을 재방문하지 않고 파송받았던 안디옥으로 바로 갔다면 훨씬 수월한 여행이 되었을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맞았던 곳을 피해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교회들을 다시 돌아보고 말씀으로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 그 곳들로 달려 갔습니다. 바울 일행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과 다시 마주쳐도 상관없다는 굳은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제 갓 믿기 시작한 사람들의 신앙을 굳게 해줄수만 있다면 이미 자신이 겪은 위험을 다시 당한다해도 피하지 않을 용기를 냈던 것입니다.  

  바울 일행의 재방문은 다시 위험에 노출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성들로 다시 "되 돌아가서" 생명 걸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바울 일행이 이 성들을 재방문한 목적이 무엇이엇습니까? 오늘은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1, 돌아가서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돌아가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는 일를 선택했습니다.
 
  바울이 다시 돌아가는 그 길을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잘못 계산했거나 착각했거나 바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 박해가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줄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가장 원만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바울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자와 같은 그들이므로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 가서 그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하고 권했습니다. 믿음을 한번 맛보거나 그저 체험해 보라고 말하지 않고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머물러 있다'는 말은 계속 거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굳게 하여 계속해서 머물러야 할 "이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울을 통해 루스드라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병자를 고치신 하나님, 돌에 맞아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울이 제자들이 둘러 서 있는 가운데서 일어나 다시 루스드라 성으로 들어가게 했던 그 놀라우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머물러야 할 대상은 변덕 스러운 사람이나 상황이 아니라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2,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권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이 말은 바울과 초대교회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고난받는 모든 성도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들어가려는 모든 성도가 겪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면 무조건 좋은 일만 있으리라고 여기는 주술적인 신앙에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환난에도 시험이 들고 넘어져버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신이 전도하여 세운 제자들과 교회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환난이 따르며 그러한 환난을 믿음과 인내로 극복해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믿음에 굳게 서도록 당부한 것입니다.
 
  바울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나라, 교회, 성도가 세워지는 것은 악한 마귀에게는 치명상입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악한 세력과의 전쟁입니다. 하나님 나라 , 교회, 성도가 세워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적과 외적에 다양한 시험이 존재합니다. 성도의 삶에서는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에서 칭찬만 받고 사랑만 받을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미움을 받고 고난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받을 영광도 많아질 것입니다. 
  
  3, 돌아가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세우고,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자 했습니다.  
  장로들을 택하여 안수하고, 금식과 기도로 세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금식과 기도로 교회 지도자를 장로로 세운 교회를  그들이 믿는 주님께 의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우고자 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하나님의 은혜로 세우신 교회들을 한 번 세운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돌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바라보고 본본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갖춥시다. 

  이것이 바울사도 일행이 "거기로 되돌아 가는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선교했던 곳을 "돌아가서" 재방문하고 자기들을 파송해 주었던 안디옥교회로 "돌아가서" 1차전도여행을 했던 보고를 하게 됩니다. 그 보고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보고 하냐 하면, 27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1차선교여행 보고대회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대회를 한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실제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주목했습니다. 비록 돌에 맞고, 자기가 죽을 지경이 되어도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았습니다. 혼란도 있었고, 대적하는 사람도 일어났고, 자기가 죽을 정도로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지만, 그것보다도 사도 바울이 보았던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복음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려고 힘써야 할줄로 믿습니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