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행 14:8~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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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행 14:8~18)

유앙겔리온 2025. 1. 30. 19:23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사도행전 14:8~18 

행14: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행14: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행14: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14: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행14: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행14: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행14: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행14: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행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행14: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행14: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인간에게는 자기 우상화를 즐기고 싶어하는 악한 본능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현대에 이를수록 이 본능을 자극하고 깨우려는 시도들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자기 우상화의 본능을 극복하고 참되신 하나님에게만 시선을 돌리도록 했던 오늘 본문의 사건을? 귀감으로 삼아 자기 우상화를 극복하는 여러분들 되기바랍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 오래 머물러 사역을 하면서 많은 회심자들을 얻기도 했으나 그와 함께 엄청난 반대와 모욕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대와 모욕이 도를 넘어 살인 위협에 이르게 되었을 때 성령께서 이고니온을 떠날 마음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곳에 오래 머물며 복음의 터를 견교하게 해놓았지만 미련없이 그곳을 떠나 성령이 인도해주시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고니온을 떠나 옮겨간 곳은 루스드라였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나면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을 일어나 걷게 하는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선교현장에서는 일반적인 목회현장보다 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현장을 선교현장화 하십시오. 그러면 더 많은 은혜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사도 일행이 이고니온을 떠나 루스드라에 와서 말씀을 전할 때에 청중 가운데는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본적이 없는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그 앉은 자리에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일어났고 그리고 곧 걸었습니다. 

 전도의 현장에 그리고 사역의 현장에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과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현대 기독교가 너무 지성적으로만 흘러가버리고 정작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은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앉은뱅이가 바울의 명령과 함께 벌떡 일어났을 때 그곳에 함께 앉아있던 사람들과 그것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너무나 놀란 나머지,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위로부터 내려왔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소와 화관을 가져와서 제사하려고 했습니다.

  11~13절에 봅시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했습니다. 

  전도자들이나 은사자들이 늘상 직면하는 위험은 바로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위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권세와 명성을 얻고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 것이 핍박을 받고 돌로 침을 받는 것보다 더 쉽고 평안한 길이지만 영적으로는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서 그러한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런 경우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옷을 찢고 자신들은 하나님을 전하는 자들이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만류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옷을 찢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며, 특히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강하게 드러내는 행동이었다고 보여집니다. 

  15절 말씀을 한번 보십시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고 불의와 불법을 행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여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의롭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나섰는데, 그것을 위해서 나선 우리가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는 자가 되게 하려느냐? 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전하는 분명한 목적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바울과 바나바는 이 목적에 충실했습니다. 그리했기에 바울과 바나바는 경배를 받고자 하는 시험(유혹)을 이겼습니다. 조금만 자기 욕심을 부렸다고 하면, 그리고 조금만 목적에서 벗어났다고 하면 자기가 우상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끊질기고 강력하게 우상이 되어줄 것을 강요하고 유혹했지는 알 수 있습니다. 겨우 무리를 뜯어 말릴 지경이었습니다. 

  요즈음 날 누가 그렇게 우상으로 만들어주지 않나 하고 은근히 부추기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그런 시험에 빠져버린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는 얼마나 비교가 됩니까? 

  이러한 일들은 주의 종들이, 복음 전하는 자들이,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경계해야 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인줄로 믿습니다. 

  인간은 늘 인간 이상으로 비약하려고 하는 경향과 인간 이하로 전략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비약한다고 해도 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자기가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 넘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스로 신격화했던지 주변에서 신격화를 시켰던지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 그 어떤 것도 신격화를 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인간의 자리로 겸손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은 물질의 자리로, 자연은 자연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오늘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이 가져야 할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이 가로채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게 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경쓰시지는 않습니까? 이런 것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믿는 자의 본연의 자세를 끝까지 지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우상화하려고 할 때 단호하게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고 하면서 거절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