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요셉과 마리아의 기다림(눅 2:1~7) 본문
대림절 넷째주일
요셉과 마리아의 기다림
눅 2:1~7
눅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눅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눅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눅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눅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눅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눅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성경은 인간의 실존을 "기다림의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분이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은 즐거움과 흥분을 주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 불확실성과 고독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한다면 삶의 중요한 일부로서 큰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 기다림의 주인공은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기다림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로 아직 동침하기 전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뜬 금없이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성령 잉태의 소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마리아나 요셉이나, 둘 다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리아와 요셉을 설득하시기 위해 천사를 통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현몽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들이 잘 아실줄로 믿고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이렇게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아들로 받아 키우기로 결심하기까지 힘겨운 시간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결국 요셉과 마리아가 이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요셉과 마리아는 아이가 태어나는 날을 간절히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기만 하면 다 되려니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 느닷없이 본문 1~2절에 보면 변수가 생긴 것입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성령잉태를 받아들이고 평안을 찾게 되고 잉태된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을 즈음에 국가의 인구 조사로 인해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게 된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이고, 다윗의 고향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며, 기다림의 성취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주님을 잉태한 채로 호적을 위하여 유다 사막지방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본문 4~5절에,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이미 잉태하여 만삭이 되어서 무거운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제국의 호적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에서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향하여 떠나게 된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서 120~30km 거리의 먼 길을 이동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2, 3주가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고, 더구나 유대 지역은 산악지대입니다.
이들이 통과해야할 유대 땅은 사막과 산지로 이뤄졌기 때문에 성경에서 특히 그 길은 "올라가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든 길이었습니다.
임신 중에 이런 장거리 여행은 힘이 들 뿐 아니라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할 것을 알고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해 여행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서 한 여행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험한 여정을 통하여 요셉과 마리아가 베드레헴에 도착해보니 이미 베들레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곳, 저 곳 여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들을 위한 빈방이 남아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나마 짐승들의 마구간에서 차가운 밤이슬을 피할 수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길바닥에서 아이 낳는 일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를 이렇게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과 마리아의 이 기다림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나 불만이나 원망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불편을 말하려면 끝이 없었을 것입니다. 섭섭한 것을 말하려면 왜 없었겠습니까?
이러한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잘 제시하는 가장 강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불평불만을 많이 합니다. 원망이 많습니다. 왜 자기에만 나쁜 것을 주시느냐?는 말을 거침없이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기다림은 그들의 신앙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따르는 온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믿음과 인내,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마리아처럼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는 일들을, 그리고 요셉처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을지라도" 그런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불평과 원망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삶에서 요셉과 마리아처럼 "그리스도"를 품고 그 분을 낳기 위해 "힘겨운 오름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기다리는 모든 행위는 이처럼 가치있는 일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