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히 10:23~25) 본문
대림절 셋째주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히 10:23~25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는 언제나 "그 날"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도 "그 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그 날"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날입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그 날은 구약에서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날로,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을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그 날"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을 위하여 준비된 자들에게 그 날은 어떻게 오든 복된 날이고 준비된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규정하는 것은 "그 날"에 대한 인식일 것입니다. "그 날"은 미래에 있을 어떤 날입니다. 아직 현실이 되지 않는 어느 미래의 날입니다. 그 날은 소망의 날이기도 하지만 또한 두려움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날"은 신실하신 주님이 약속하신 날이므로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인데, 문제는 우리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정직한 반응을 해야 되는데,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우리가 더욱 그리할 일"이 무엇인가를 오늘 본문에서는 3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우리가 더욱 그리해야 할 것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3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입니까? 믿는 도리의 소망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다보면 어려움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면 믿는 도리의 소망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이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악한 마귀 사단은 외부적인 강한 압력과 내부적인 의심으로 우리를 넘어뜨려고 할 것입니다. 외부의 강한 압력이나 영향에 흔들리지도 말고 또 내부적인 의심이나 낙심으로 소망을 여기저기로 옮기지도 말며 절대로 가볍게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정이나 어떤 이유로도 이 믿음의 진군을 중단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삶의 선택입니다. 그날이 이전보다 더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구원의 완성의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충성할 때 주께서 상급을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날"에 공과를 가려 상을 주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날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참 많은 사정이 생깁니다. 시험도 많습니다. 시련도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물질 때문에, 분주한 일들 때문에 흔들릴 때도 많습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것은 당연지사이겠지만 바람에 꺾이거나 뽑혀버리면 안 됩니다. 흔들리더라도 흔들릴수록 뿌리를 깊게 굳게 박고 서야 좋은 열매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우리가 더욱 그리해야 할 것은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사랑과 선행이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가까올수록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은 심하여지고 사랑은 식어지고 거짓과 불법이 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서로 돌보고 격려하는 일은 아주 낯설고 육신의 괴로움과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거슬 지불하고서도 성도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사랑하며 살려고 결혼했는데, 부부가 서로 상처를 주면서 삽니다. 위로받고 사랑받으면서 살려고 교회에 왔는데, 사람들이 상처를 줍니다. 이런 역기능적인 관계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격려할 때 모든 역경을 이기고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서로 격려해야 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게 사랑과 선행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 날"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3.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우리가 더욱 그리해야 할 것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입니까?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분주함은 더하고 개인주의는 더욱 성행하고 육체의 즐거움을 쫓아가는 경향성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주의 집에 모이기를 싫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다"는 말은 바로 "예배하는 일"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것은 "예배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가 즉 "고통하는 때"가 이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느냐 하면, 딤후 3: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했습니다.
이런 종말의 때, 고통하는 때가 가까워져질 때에 성전에 나왔다 가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사실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지금 우리를 만든 것이고 또한 앞으로 우리가 성전에 나와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의 모습을 결정 지을 것입니다.
갈수록 성전에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농경사회에서처럼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다 힘을 다 소진하고 세상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이 핑계 저 핑계 모이기를 폐하는 경우가 생겨지게 됩니다. 교회도 성도의 생활을 살펴서 적정한의 모임횟수와 시간을 유지하도록 해야겠지만 성도들도 힘든 가운데서도 모이기를 더욱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21년 전 우리 교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보고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많이 약해져 고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해가 거듭할수록 육신의 장막집은 지금보다 더 낡아지고 후패해져 고통하는 모습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겉 사람은 낡아져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날"은 있습니다. 그 날은 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도리를 더욱 굳게 잡아야 하며,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는 일을 힘써야 하고,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주님 만나게 되는 그 종말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