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9~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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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9~12)

유앙겔리온 2024. 12. 4. 15:45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 6:9~12 

6: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6:10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며 일하며 쉴 때, 우리로 하여금 낙심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하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하는 일 가운데 결코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말은 “에필란다노마이”로 “등한시하지 않는다, 간과하지 않는다, 무관심하지 않는다,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게 되면 그것을 따르게 될 것이고 그것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신앙은 더욱 더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등한시 하지 않으시며, 간과하지 않으시며,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잊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성도가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큰 감동과 큰 울림을 주는 사람은 어떤 업적으로 화려해진 사람보다 겸손히 섬기는 사람입니다. 섬김은 하나님으로 부터의 축복의 비결이고, 사람들에게 받을 수 있는 진심어린 존경의 비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대접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신분에 걸 맞는 섬김을 받지 못하면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고 화를 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신분은 그가 누구든 예수님을 본 삼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보는 것처럼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지 아니하는 성도가 되려면 사랑의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를 먼저 섬겨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질로 섬기기도 하고, 슬픔을 대신 지는 위로의 방법으로 섬겨야 하고 기쁨을 함께 하는 섬김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미 섬겼다면 이제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섬김에는 반드시 사랑의 수고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없으면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고가 싫기 때문입니다.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수고를 동반해야 합니다. 자기의 체면을 버리는 수고, 자기의 이익을 버리는 수고,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을 버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버리는 수고가 없이는 참 사랑이 실천될 수 없습니다. 수고가 없는 사랑은 사실 사랑이 아니라 속음수 이며 사랑이란 미명 아래 사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수고의 행위가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수고가 동반된 사랑의 행위를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마지막 날에 하늘의 상급으로 채워주실줄 믿습니다. 

  우리의 어떤 섬김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실까요? 

  1, 일반적이고 작은 섬김을 평생토록 하는 것을 하나님은 잊어버리지 아니하실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섬김의 삶은 한 때의 감동과 감격으로 인한 충동적 섬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섬김이어야 합니다. 

  순교보다 어려운 것이 평생을 통한 일반적이고 작은 섬김의 실천일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서 부터 섬김을 훈련해야 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섬김은 지루하게 시간을 끄는 일이고 지칠 정도로 오래 가는 일이며 반복적인 일지라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은 나의 의사와 그때의 기분과 감정적 동요와 관계없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섬김의 일, 중심에 자신이 계속 위치해서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상황은, 우리를 어렵게 하고 도망가고 싶게 만들고,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듣던지 말던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실재적으로 그런 유혹에 빠져서 변덕을 부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변덕없이 섬기는 일을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고 기억해주시는 것입니다. 

  2, 은밀한 섬김을 하나님은 잊어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의 섬김을 주의 이름으로 섬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섬겼다는 것은 곧 주님이 섬겼다는 말입니다. 결국 주님은 성도가 섬김 것을 통하여서 주님 자신의 일하심을 드러내고 계신 겁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해놓고도 자신이 한 것처럼 영광을 가로채는 이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섬김의 유일한 관객은 오직 주님 한 분이라는 자세로 섬김에 임하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 모르는 선행은 더욱 큰 감동을 더욱 오랫동안 주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남 모르는 선행과 섬김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이렇게 생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그 알아줌에 의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 알아주심으로 영혼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섬김이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3,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하는 섬김을 하나님은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섬겨놓고 섭섭해하고 분노하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섬김 후의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보상의 부담으로 부터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섬김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섬김 그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섬김이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섬기고 삽니까? 섬김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습니까? 

  사랑과 섬김이 많이 공급돼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다양한 봉사와 섬김으로 교회라는 하나님 나라를 이룹니다. 문제는 이러한 섬김이 “변덕없이, 은밀하게,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란 심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통하여 하나님이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면서까지 섬기는 일을 우리로 하여금 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는 것을 간직하고 사는 자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받는 자가 되는 길은 바로 “사랑의 수고를 통하여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