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서기관의 거짓의 붓(렘 8:8~9) 본문
서기관의 거짓의 붓
렘 8:8~9
렘8: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렘8: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오늘은 종교개혁 507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서기관의 거짓의 붓을 꺽으시고 그 거짓의 붓에 의해서 왜곡된 말씀과 교회를 회복시켜주신 일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본문 말씀에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서기관은 어떤 사람입니까? “서기관”은 히 “쏘페르”로 “셈하다, 기록하다”는 뜻을 지닌 “싸파르”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서기, 서기관의 의미가 유래했습니다. 서기관은 율법 즉 성경을 필사하여 보존하거나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쳐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세워진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서기관의 전통에 의하면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할 때는 매번 완전히 목욕을 하고 완전히 옷을 갈아 입었으며, 그 문자를 기록하는데 사용한 붓을 부러뜨렸다고 합니다. 감히 문자로나 입으로 말하기가 황송한 그 이름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서기관의 하나님 경외는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대 서기관들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기원전 6세기 이후)부터 점점 더 그 기능이 중요해졌습니다.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성전 없이 종교를 유지해야 했고,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이때부터 율법의 해석과 법적 적용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기관의 말씀기록과 그 해석에 의해서 신앙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이들이 정직하게 그 직무를 감당해서 생명의 길을 가르쳐줄 때, 그 백성들은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성경 해석이 왜곡될 때에는 그들의 가르침을 받으면 받을수록 생명의 길을 가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과 사이비의 사상은 성경을 잘못 배우고 잘못 깨달은데서 나온 것입니다. 곧 그 중심에는 "서기관의 거짓 붓"이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의 거짓 붓끝에서 나오는 율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되고, 그 율법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점점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됩니다. 바로 알지 못한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거짓된 서기관들은 자신의 붓을 가지고 율법을 그대로 옮겨 쓰지 않고 조금씩 다르게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거짓된 붓끝으로 쓰여진 것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살게 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서기관의 거짓 붓끝에서 나오는 말씀은 그 말씀으로 사는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떠난 자는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미련한 자로서 마귀의 포로가 되어 마귀의 일을 해 주다가 패망하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서기관의 붓끝이야 말로 한 인생의 운명과 한 가정 그리고 한 나라와 민족의 운명, 한 시대의 역사를 결정짓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에 서기관들의 이 붓끝은 “거짓의 붓”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임의로 고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 시대에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율법을 그릇 해석하기 일 수 였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는 이들에게 그런 불순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말씀을 해석하는 영리한 방법을 찾아내는 비뚫어진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래서 괜찮게 믿고 괜찮게 살고 있는 줄 착각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기에 부족할 리가 없다고 확신하기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뚫어진 능력으로 아무리 지혜를 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말해도 그것은 서기관에 의해서 곡해되고 변괴된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값싼 은혜요, 거짓 구원으로 종교 팔이, 하나님 팔이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해석에 따라 산다면 하나님의 뜻은 결국 그릇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자주 언급되고 비난을 받았던 동일한 부류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예수시대에도 서기관들은 대중적인 요구에 영합하는 해석을 통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심지어는 생명을 다하여 힘써야 할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피하도록 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중대한 내용이 제기하는 더 힘든 도전을 회피하는 길을 찾도록 했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레미야시대의 서기관들은 어떻게 서기관의 거짓 붓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습니까?
당시에 유대 상황은 회개해야 할 것 밖에 없는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평강이 회개치도 않는 유대를 향하여 오고 있다는 거짓 가르침으로 헛되이 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유다백성들로 하여금 회개의 기회를 박탈하고, 평강을 얻을 기회를 빼앗았던 것입니다.
범죄했으면 더렵혀졌으면 반드시 회개하고 깨끗케 함을 받아야 평강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도 평강을 약속하는 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기관의 거짓된 붓끝으로 값싼 위로, 거짓된 구원의 확신으로 하나님 백성들의 신앙을 뒤흔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막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기회를 박탈하고 빼앗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서기관의 거짓 붓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획을 더하고 빼는 시대의 한 복판에 서 있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거짓된 붓을 가진 서기관과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9절 말씀을 보십시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했습니다. 남유다의 결말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진 인생이 바른 인생길, 바른 신앙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똑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서기관의 거짓된 붓’을 분별할 수 있는 성도들로 자라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과 은혜와 축복과 번영의 말씀뿐만 아니라, 공의와 정의와 심판과 책망과 징계의 말씀에도, 변함없이 동일하게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기관과 같이 말씀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를 통해 서기관의 정직한 붓끝에서 나오는 말씀에 능력이 임할 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 공동체가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서기관이나 백성들이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