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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투구를 쓰라(엡 6:17)

유앙겔리온 2024. 10. 7. 21:07

구원의 투구를 쓰라
엡 6:17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상 단순히 놀이나 하는 삶이 아니라 치열하게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삶이라는 사실을 이미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도 모르는 분들이나 인정하지 않을 분들은 없는 줄로 압니다. 

  이 영적 전쟁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부름을 받았고 세움을 입었습니다. 영적 전쟁터에 부름을 받고 세움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영적 무장을 잘해야 합니다. 무장되지 않는 군사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갖추어 입어야 할 영적 전신갑주에 대해서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 우리의 머리에 써야 할 "구원의 투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전투하는 군사는 "투구, 즉 전투모"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 여러분이 전쟁에 나가서 적을 넘어뜨리기 원한다면, 가장 먼저 노리는 곳이 어디이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장 우선적으로 신경 써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이겠습니까? 머리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단번에 쓰러뜨리기 위해서 물메돌로 과녘을 삼았던 곳이 어디였습니까?

  머리였습니다. 투구가 다 덮지 못하고 빈 곳 바로 그 몇 센치도 안된 곳을 과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 용맹스럽고 무시무시한 거구를 가진 골리앗을 소리 한 번 질러보지도 못하고 단번에 쓰러지도록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적의 취약점이 바로 나의 취약점입니다.  

  "투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신체도 중요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머리는 우리 몸 중에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머리를 다치면 그것이 치명적인 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그 어떤 것보다 머리를 지키는데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고 지키는 도구가 바로 투구입니다. 

  "투구"는 영어성경에서는 "헬멧(Helmet)"으로 번역했습니다. 헬멧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생활전선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필요하고 심지어는 법적으로 강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머리에 헬멧을 쓰지 않으면 불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종목의 운동선수들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씁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사실 두 팔 중에 하나가 없어도 삽니다. 두 다리 중에 하나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깨지면 살 수가 없습니다. 죽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보호하는데 소홀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영적 군사라고 하면 어떤 투구, 어떤 전투모를 써야 하겠습니까? 어떤 투구, 어떤 헬멧을 쓰지 않으면 불의한 것이며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것은 "구원의 투구"입니다. 성경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그냥 "머리에 투구를 쓰라"고 하지 않고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투구에 비유하였을까요? 그것은 "투구"는 우리의 머리를 보호해 주는 점에서 구원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구원과 "머리를 보호하는 것"과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구원을 지키는 것은 정확하게 우리의 머리를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지 않고 있다가 원수에게 머리를 공격 당하면 그는 당장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 잡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영적 삶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물리적인 전쟁이라면 튼튼하게 만든 철모를 쓰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이며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싸움에서는 단순하게 철로 만든 투구가 아니라 "구원의 투구(the helmet of salvation)"를 써야 합니다. 

  성서시대에는, 로마시대 때에는 전쟁 중에 적군의 목을 베어오는 것이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적을 모독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행위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잘라 하늘을 향하여 높이 듦으로써 블레셋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켜 승리를 거머쥘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반면, 블레셋 군사들도 사울 왕과 싸워 이겼을 때 이미 죽은 사울왕의 머리를 베어 모든 블레셋 사람의 땅에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아군에게는 기세를 올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투구를 쓰고 다니지 않다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도 비참을 당할 뿐만 아니라 같은 편인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에게도 한없는 실망과 비참과 손해와 부끄러움을 안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적 전투에서는 구원의 정의, 구원론의 정립, 구원의 확신에 문제가 생기면 머리를 다친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하면 머리를 잘린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뭉치로 머리를 맞는다든지, 화살이 머리를 관통한다든지, 칼이 머리를 가르거나 자른다든지 하면 싸움이 끝난 것처럼 성도들의 구원관이 잘못되면 영적으로 죽은 것과 별다를게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머리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넘어선 공상적인 생각, 감정으로 시작되는 허황된 절망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다하였다는 그릇된 정죄의식,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다 거짓말 같다는 생각 등 사단은 우리의 머리, 즉 생각을 통하여 공격을 해 옵니다. 

  그러므로 영적전쟁을 치르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구원의 투구"를 써서 이런 마귀 공격을 막아내야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투구"라함은 "구원의 확신"을 말한다고 규정해도 괜찮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확신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안정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사탄의 공격은 교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묘하게 우리의 생각을 파고 들어와서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죄의식을 불어 넣습니다. 그것도 아주 논리적인 방법으로 흔들어 놓습니다. 

  사탄은 늘 이렇게 그럴듯한 논리로 성도들의 머리를 공격합니다. 구원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릇된 생각을 불어 넣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낙심하게 하고 두러워 하게 하고 포기하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진리의 허리띠가 무슨 소용이 있고, 의의 흉배가 무슨 소용이 있고, 믿음의 방패가 무슨 소용이 있고, 성령의 검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투구를 씀으로써, 구원받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며 다가오는 모든 어리석은 머리의 생각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 곧 우리의 사고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에, 우리는 너무나 자주 쓸데없는 생각에 의해 지배를 받기가 일쑤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가지라'는 말은 이것을 씀으로써 모든 사단의 공격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안전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투구를 씀으로써 군인의 지체 중 가장 치명적인 부위가 될 머리 부분을 보호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그리고 구원받은 당신의 자녀에게 이미 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이 우리의 머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사람은 머리가 깨진 사람이며, 머리가 잘린 사람입니다. 이들은 적군에게는 기세를 올려주고 아군에게는 겁을 주고 낙심을 심어지고, 사기를 떨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서 "구원의 투구"를 확실하게 다시 온전하게 쓰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