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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호심경을 붙이고(엡6:14b)

유앙겔리온 2024. 9. 13. 12:50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엡6:14b 

엡6:14b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여기서 섬기고 살아가고 있는 지상에 있는 지역교회는 전투적인 교회입니다. 엎치락뒤치락,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영적전쟁을 치열하게 치르면서 살아내고 있는 전장입니다. 

  그런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사도는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띨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사도바울는 "의의 호심경을 붙일 것"을 말씀하신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 말씀에 이어서 두 번째로 주님의 좋은 군사들이 무장해야 할 "의의 호심경"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호심경 

  "호심경"은 가죽, 쇠, 구리 등으로 병사의 가슴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군사장비입니다. 일종의 가슴을 가리는 방탄조끼와 같은 것입니다. 

  여기"호심경"이라는 말에 쓰인 헬라어가 '도락스'입니다. 원뜻은 "가슴, 흉부"를 의미는 말입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흉배"라고 번역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흉갑'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서시대에 로마 군인들은 허리띠 위에 흉배를 대고 있었습니다. 흉배는 가슴과 배를 모두 가리는 가죽이나 혹은 얇은 철판으로 만든 보호 장구입니다. 

  당시 고대 사람들은 그 가슴 안에 사람의 마음과 기분과 감정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신체의 어느 부분보다 넓고 큰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공격 받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호심경, 즉 흉배'는 어떤 공격에 대한 보호 장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감정과 기분과 양심과 욕구와 의지를 공격하는 사단의 공격에 대한 보호 장구인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영적 전쟁에서 의의 호심경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을 두 번째로 상정한 것은 사람이 가슴을 다치는 것이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호심경으로 가슴을 보호하는 일이 너무나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가슴을 다치는 시대입니다. 마음이 쉽게 상하는 시대입니다. 악한 마귀 사단은 그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그래서 이성이나 논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마음이 상할만한 것에 달라붙어서 작동을 합니다.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면 안넘어지는 사람이별로 없습니다. 

  절망케 하고 교만케 하고 섭섭케 합니다. 이 감성을 파고드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면 설득이 통하지 않습니다. 달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끝내 원수가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호심경은 가슴을 파고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가슴을 보호해줍니다. 심장을 보호해줍니다. 호심경은 이처럼 가슴, 곧 마음과 정서와 의지 등에 관계되는 무기입니다. 감성적인 부분을 가리워주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기분이나 감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감정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신비주의에도 쉽게 빠지고 섭섭주의, 서운주의에도 잘 빠집니다. 신비한 경험들에 심취하고 감정에 끌려다니다 보면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추구해야 할 것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마귀의 장난입니다. 

  2, 의의 

  그러므로 영적 싸움터에 나가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무엇으로 가슴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겠습니까? 가슴이 무엇으로 이글거리고 불타올라야 하겠습니까?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베소서 6:12)"을 정복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의 영적 군사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숨통을 끊어놓으려고 표적을 삼고 공격하는 우리의 심장과 마음을 무엇으로 지키고 보호해야 하겠습니까? 무엇으로 마음을 가리고 채워야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말씀은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합니다. 의의 호심경, 의의 흉배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의 마음이 "의(義, righteousness)"로 가득 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의 가슴이 "의"로 불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 바로 사단의 세력들은 거짓말쟁이 이고 참소자들입니다. 그들은 거짓말과 참소함으로써 세상을 항해 증거하는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무너뜨리기 좋아합니다. 

  믿을 만한 이야기롤 해도 도무지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사단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믿을 만한 이야기를 해도 믿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일을 꾸밉니다. 그래서는 그 영혼을 병들게 하고 그 삶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 적그리스도, 사이비와 이단들이 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잘 믿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믿은 것을 부정하게 하고 의심하게 하고 그래서 비판자 비난자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수하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소자들을 잠잠케 할 수 있는 무기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즉 그 무기는 의의 호심경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의의 호심경으로 우리의 가슴, 우리의 심장, 우리의 감성의 성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의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을 통하여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의롭게 하셨습니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얻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심장에는 예수님의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만 합니다. 

  예수의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는 것은 곧 나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나의 가슴을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구속의 은혜를 믿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이미 그리스도인인 사람을 향한 새 약속이며 동시에 강력한 촉구이며 명령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이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의롭함을 얻었다는 확신, 그리고 의롭게 살고 있다는 자기 삶에 대한 긍정을 갖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를 의롭게 살도록 우리를 지도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루어 가는 의입니다. 

  이는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화되는 것입니다.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거룩을 위한 싸움입니다. 

  계 19:8절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하나님의 의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의롭다함의 확신과 연약할 때 마다 도우시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으로써 다시 더러워지지 않도록, 그리고 혹시 더러워졌을지라도 속히 깨끗이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의 옳은 행실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3, 붙이고 

  의의 흉배는 붙이는 것입니다. 창고에 보관해 놓고 다녀서는 안됩니다. 여기 "붙이고"는 헬, '엔뒤오'인데 "옷 입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다. 안쪽으로 들어가 앉아 있다. 안으로 스며들다"라는 의미을 가진 말입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는 것은 겉으로 입는 것만이 아닌 더 중요한 것은 의의 말씀 안으로, 성령충만 안으로, 성결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며, 안으로 스며 들어가고 저며들어가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장식품이 아닌 안으로까지 스며드는 의의 흉배여야 합니다. 

  의의 호심경으로 '엔뒤오' 하는 것, 즉 붙이는 것, 그것이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길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