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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 신앙생활(엡 6:10~13)

유앙겔리온 2024. 9. 10. 06:47

전쟁같은 신앙생활
엡 6:10~13 

엡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를 써서 에베소교회에 보낼 당시에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살기 위해서는, 마치 전쟁을 치르는 각오와 결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런 시대였습니다. 

  초대교회, 이 시대에는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단지 세상의 취미활동이나 여가활동 정도로 생각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이란 것이 전쟁같은 현실임을 인식시켜준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후서에서도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군사의 모습과 같다"(딤후 2:3)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성과 병사의 특성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군병으로서 진리와 믿음으로 사탄과 악에 대하여 싸워서 이겨야 할 신령한 군사입니다. 그런데 군사는 좋은 군사가 있는가 하면 나쁜 군사도 있습니다. 군사들 중에도 탈령을 하는 군사도 있고 자신을 모집한 국가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사롭게 일을 처리하는 군사들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생활이 여가생활이나 취미생황이 아닌 영적 전쟁을 치르는 전투라는 현실인식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쟁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악한 마귀의 역사와 육신의 소욕이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이겨 먹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신앙생활 뿐이겠습니까? 
삶은 하나의 전쟁터입니다. 아것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싸움에서 승리하기가 더 쉬워지고 빨라질 것입니다. 

  이 씨름, 이 싸움, 이 전쟁은 “우리의 씨름이며, 우리의 싸움이며, 우리의 전쟁”입니다. 누구에게 떠넘길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대리전으로 용병으로 해서는 안될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믿음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이 시험에 들어 비틀거리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쟁은 어느시대나 최고의 전사가 필요하고, 최고의 무기가 필요하며, 최고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전사가 시원치 못하다거나, 무기가 형편이 없다거나, 집중력을 떨어뜨린 전쟁이라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전쟁의 패배가 가져오는 결과물은 참으로 참담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패전은 피해야 합니다. 패전이 아닌 승전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기려고 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취미나 여가생활동이 아닌 전쟁처럼 치열하고 위태롭다면, 지키고? 이기기 위해서 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미나 여가도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비가 좋아야 합니다. 하물며 죽고 사는 전쟁에서 장비와 무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최고의 자원과 최고의 과학과 최고의 신기술과 최고의 힘은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무기제작과 판매를 지배하는 나라가 최강국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전쟁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10~11절에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하나님의 전심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하여지라'는 말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힘을 모아 분발하라는 말입니다. 약한자에게 강하게 싸우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라는 말은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그 유일한 근원으로부터 힘을 구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힘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모든 성도의 능력은 만군의 주님에게서 비롯됩니다. 

  입고 취해야 할 전신갑주도 내 전신갑주가 아닙니다. " 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자기 몸에 맞도록 입어보아야 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훈련없이 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훈련하는 군사가 좋은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훈련하지 않으면 몸이 둔하여지고 정신이 빠지게 되어서 정작 전장에 나가서는 제 몫을 할 수 없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제몫을 하지 못하는 군사는 결국 다른 군사의 목숨까지 위태로움에 빠지게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새벽예배도 훈련이고 기도도 훈련이고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며 사는 것도 훈련입니다. 훈련없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훈련하지 않으면 점점 나빠질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가 이 전쟁을 말하면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한 것입니다. 

  영적전쟁을 알면, 헛발질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싸우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악한 영을 상대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적해야 할 적은 상상의 존재들이거나 평범한 적이 아닙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영적이며, 초인간적인 것들이며, 불가시적인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전쟁은 비행부대나 탱크부대나 드론부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장하고 사용해야 할 무기도 세상 군대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와는 전혀 다른 무기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투적 자세를 간과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생활은 삶의 취미활동이나 장식품으로 쉽게 전락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무장하고 싸우고도 서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무장하고 전쟁을 치러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했습니다.

  여기 ‘선다’는 말은 의심이나 공포 없이 확신 가운데 서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 이겨놓고도 서지 못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많은 싸움을 싸우고도 자신이 서 있어야할 자리에 서 있지 못한다면 그 싸움과 승리는 무익한 것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우리게 주신 말씀의 지시 사항을 신실하게 따르므로써 사단의 전략과 상관없이 승리를 얻어 굳게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