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주 안에 서라(빌 4: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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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 서라(빌 4:1)

유앙겔리온 2024. 6. 6. 20:15

주 안에 서라.
빌 4:1 

빌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바울 사도는 본문 바로 앞장인 빌립보서 3장에서 세 가지 것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시민권은 세상 그 어떤 나라의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시민권보다 더 귀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자임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할 수 없는 구원을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의 낡고 천한 몸, 병들고 썩을 몸을 부활의 몸, 영광의 몸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세월과 함께 늙고 주름지고 병들고 죽어가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야만 변화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4장을 통하여 이와같은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과 복음 공동체가 우리의 삶속에서 꼭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몇 가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몇 시간 동안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째 시간으로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고 권고하고 있는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1). 

  이 권고를 주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을 향하여 권고합니다. 

  1, 서라
  왜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 안에 서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빌립보교회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은데 주 안에 단단히 서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지금 안팎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흔들리지 말고 굳건하게 서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흔들림은 넘어질만한 흔들림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안전이나 안정이 보장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시대상황입니다. 가치체계가 송두리체 흔들리고 뽑히는 이런때에 흔들리는 상황에 따라 함께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게 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 언급된 "서라"는 표현은 헬라어 '스테코'라는 말인데 이는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전쟁터에서 끝까지 자기 참호를 사수함을 가리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자유가 최우선인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전쟁에 임하는 병사는 달라야 하는 것이지요. 

  기독교인들은 이런 '스테코' 정신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결코 무사안일하고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유혹이 있고 시험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를 치루고 있는 병사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견고히 믿음을 지키고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신앙이며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힘써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2, 주 안에
  이 세상에는 주안에 선 사람과 주 밖에 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여기서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주 안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어디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 안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새 생명을 얻었고, 그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보호받고 양육 받고 그 결과 장차 우리는 예수와 함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예수 안에서 든든히 서야 할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40회에 걸쳐서 "주 안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야 바른 신자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신념, 사상이나 주의가 아니라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찍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흔들림이 없이 서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인들이 주 안에 서 있지 않고 자기 고집과 자기 신념과 자기 중심에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 안에 서 있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주안에 서 있는 자가 안전하며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주안에 견고히 서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이와 같이"주 안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7절 이하에서 상기시켜주었던 3가지, 즉 첫째,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과 둘째, 우리는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라는 것, 셋째,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의 낡고 천한 몸, 병들고 썩을 몸을 부활의 몸, 영광의 몸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바울은 편지를 읽는 성도들에게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라며 권고한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와 초대교회에 모여든 성도들의 믿음이였고 가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가치 위에 굳게 서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굳게 서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 믿음 안에 굳게 서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굳게 서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 주의 일들을 해내게 되고 넘어질만한 일들에도 잘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과 주님의 교회는 이와같은 진리를 맨 앞에 두어야 합니다. 진리 안에, 복음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야 하는 것을 단지 아는 것과 아는 것을 넘어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잘 아는 일이었지만 그것을 행하는 이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아는데 머물지 말고 "이와 같이 행하는 일"로 주 안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들, 주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며 사랑하는 자들인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주 안에 굳게 서는 이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