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라마 나욧(삼상 19:18~24) 본문
라마 나욧
삼상 19:18~24
삼상19: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삼상19: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삼상19: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삼상19: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삼상19: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삼상19: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삼상19: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오늘은 교회 절기상으로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이 임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날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오순절과 일치하며, 성경에 따르면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2:1~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째에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성령의 강림은 제자들을 회복시켜 새롭게 일꾼으로 세우는 역할을 했고 이로 인해서 초대교회가 출생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래서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이 날을 교회생일날로 지키며 중요한 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아서 오늘 우리에게 본문으로 주신 말씀을 통하여 사무엘시대에 라마 나욧에 성령 역사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살피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라마 나욧'은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이었고, "나욧"은 '거주지· 거처· 초원지대'라는 뜻으로 지금의 '기숙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말입니다.
라마 나욧은 수도도 아니고 군대가 주둔하는 요새도 아니며, 그렇다고 상업이 번창하는 경제적 중심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스라엘 역사와 성령역사에서 제외될 수 없는 중요한 영적 거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은 말년에 사울이 타락하자 훗날을 기약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 '라마 나욧'이었던 것입니다. 라마 나욧은 사무엘선지자에게 있어서 보혜사 성령이 역사하신 곳입니다.
사무엘이 '라마'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명에 따라 기름 부어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라마 나욧'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사무엘에게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라마 나욧에서 함께 머물며 살았습니다.
이것을 안 사울은 세 번에 걸쳐 다윗을 잡아오라고 "전령들을 보냈으나" 그때마다 '라마 나욧'에 온 사울의 전령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들도 예언하게 되고(삼상19:21), 그들은 사울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울은 다윗을 잡으러 직접 '라마 나욧'으로 가는데, 가는 길에서부터 그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라마 나욧'에 도착한 후에는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며 벌거벗고 종일 침상에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령이 임하여 무장을 해제한 것이며, 다윗을 잡을 의사가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역사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던 사울도 평화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부터 속담이 생겨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라마 나욧'은 선지자들을 가르친 말씀 공동체요, 교육기관입니다. 또 말씀의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지성을 위해 성령의 은혜가 함께하고 역사하는 영성 훈련장이요, 성령 공동체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고 누구든지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사무엘, 다윗뿐 아니라 사울도, 사울의 전령들도 예언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세상적인 교육이나 가르침만으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교양이나 도덕적 수양만으로 인생이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라마 나욧"과 같은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통해서 사람은 변화를 받게 됩니다. 반드시 내가 성령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여야만 하고, 내가 성령의 실제를 체험하고, 그 임재 앞에 변화를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우리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가 섬기며 신앙생활하는 우리의 가정과 우리가 속한 한광교회가 "라마나욧"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라마 나욧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실망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부은 후에 조용히 돌아가 다음을 기다리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라마 나욧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상황에서 찾아가 영과 육을 회복했던 의미 있는 곳이었습니다. 성령이 그에게 가장 좋은 보혜사,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스승이 되어주셨습니다.
라마 나욧은 사울의 전령들도, 사울도 예언자가 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에도 '라마나욧'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침체기에 라마 나욧이 다윗을 품고 선지자들을 품고 다윗 시대의 영광을 준비하고 태동하게 했던 통로가 됐듯, 오늘날 다윗과 같은 이들을 품어줄 라마 나욧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라마 나욧과 같아야 합니다.
"라마 나욧"은 신앙의 공동체, 영적 공동체가 그 때나 지금이나 얼마나 인생에게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곳에 머물면 성령의 영향을 받으며, 이곳에서 기도하면 성령이 임하고 세상을 잘 살아갈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임하고 죄를 다 끊어 냅니다. 성경적 가치관이 명확하게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요즈음처럼 어렵고 힘들고 분주하고 매우 바쁘게 사는 때일지라도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소중히 여기시고 신앙의 공동체 모임에 모이기를 힘쓰고 신앙의 공동체에 임재하신 주님의 임재와 영광과 능력을 힘입고 매일 매일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들의 "라마 나욧"이 되어 출입하는 모든 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실재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