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본문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
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실 때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슬피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왜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을까요?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심이 너무 안타까워서 울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고통을 겪으시면서 상처 입은 모습, 지쳐서 쓰러지시는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울고 슬퍼서 울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비침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 그런 자신을 위해서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내 문제는 너희들이 애통해 하며 울어야 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애통해 하는 관심의 대상이 잘못 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가 불쌍하다고 울고 있지만 사실은 너희와 너희 자녀가 훨씬 더 불쌍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지금 당하고 있는 십자가의 고통은 그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가야하리라 말씀에 예고되고 약속된 대로 가야 하기 때문에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히 12:2절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는 울 것이 없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는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형을 언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시간 동안 하신 말씀으로 기록된 것으로는 유일한 말씀으로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희귀하고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여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우는 여인들에게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아닌, 바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자신을 위해서 울어주고 있는 여인들의 자녀들이 앞으로 맞을 미래가 참담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일 이후 37년이 지나서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AD 70). 이들 자신과 자녀와 손주가 그 멸망 속에 처했습니다. 멸망할 때의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어야 할 정도의 굶주림과 무수한 학살이 벌어졌고, 나라가 없어졌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은 전 세계에 흩어졌습니다. 그 이후의 유대인의 역사는 비극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때 여인들의 자녀들에게 닥칠 위험을 보았듯이 오늘도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자녀들 앞에 안전이란 유효한 것일까요? 폭력, 약물중독, 성범죄, 유괴, 질병, 자살 등, 어느 곳을 돌아봐도 안전과 평안을 느낄 수 없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전쟁과 난리와 재앙과 재난은 또 어떻습니까? 미래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내 아이, 내 가정, 내 이웃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울어본 적이 언제 였습니까? 지금 자녀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 기도하는 것이 미래에 자녀 때문에 피눈물을 흘릴 위험을 막는 길인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네 자녀를 위해 울라.'는 말에는, 울면서 기도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눈물을 흘리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슬피 울며 애통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는 것과 기도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 6:6절에 다윗은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했고, 시 39:12절에서는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또 다른 시편기자는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3)라고 하면서, 그처럼 울면서 주야로 기도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자녀에게 울며 기도하는 부모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아니라 드리리 못한 기도"인 것입니다. 눈물의 기도가 없는 것이 비극입니다.
왜 자녀들을 위하여 울며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는 삶에서 나타나는 능력의 가치가 너무 크고 놀랍기 때문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을 위해 우리도 능력 있는 기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완벽한가는 별 상관없이 없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울며 기도하는 것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담을 금향로와 함께 또한 성도들의 눈물을 담을 눈물병을 들고 서 계십니다.
오늘 주님은 울어야 할 대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 기도 제목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도 제목을 정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부탁하신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할뿐만 아니라, 자녀를 위하여 울면서 기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이 겪어야 할 모든 문제들을 미리 내다보면서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가슴을 치며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손들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눈동자처럼 지키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 하나님의 음성, 주님의 음성만 알고, 오직 그분만을 따르도록,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여 결코 어떤 이유에서라도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을 분별할줄 알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자녀손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해 주시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 손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긍심을 갖게 되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 가운데서 뒤를 돌아보시며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인 줄 알고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고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