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2~13) 본문

카테고리 없음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2~13)

유앙겔리온 2024. 5. 9. 19:09

고침을 받게 하라
히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2∼13)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신앙여정을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선수에 빗대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운동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은 선수가 부상을 당하는 것입니다. 부상당한 몸으로는 경주를 완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원치는 않지만 여러 이유로 이런 저런 부상당함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믿음의 경주자인 히브리서 공동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입은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저는 다리'는 그들의 신앙의 경주에서 치명적인 손상이며 손실이며 약점입니다.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저는 다리"는 기쁨과 평안과 안정을 주지 못합니다.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치열하게 싸움'해야 하는 영적 전투에서 이렇게 부상을 입은 체로 싸운다면 패배할 것이 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 경기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경기자나 전사가 되도록 자신을 회복시켜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늘 평온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씩씩하고 항상 명랑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길에서 손이 피곤하여 어깨가 처지기도 하고 팔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합니다.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깊은 절망과 낙심이 평온한 일상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이 상태를 그냥 방치하게 되면 안 됩니다. "고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고침을 받아야 할 것은? 

  1, "피곤한 손"입니다. 

  "피곤한 손"은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기 "피곤한"이란 헬 "파리에미"는 "풀리다" "느슨하다"라는 의미에서 "기운이 빠진" 것을 나타냅니다. 

  피곤한 손으로 느끼는 모든 무게는 실재 가지고 있는 무게 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는게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사회를 표현한 말 가운데 하나가 '피로사회'라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피로에 찌들리고 피곤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현대들인들이 삶의 무게를 훨씬 힘겹게 느끼는 것입니다. 

  비타민광고에 공감가는 광고가 있는데
중학생쯤 되는 아이가 성인 직장인에게 
  
  Q "저기 아저씨, 아저씨 나이쯤 되면 인생을 좀 알게될까요?" 질문을 하는데...
  A "아니"
  Q "그러면요?"
  A "피로를 알게 돼" 

  시대마다 질병의 특징이 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질병의 특징은 피로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침을 받지 않으면 안될 질병이 피로이며 피곤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피로사회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으로 피곤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2, "연약한 무릎"입니다. 

  연약한 무릎은 제대로 설수 없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 "연약한"에 해당하는 헬, "파랄뤼오"는 "풀어지다, 약해지다, 늘어지다, 연약하다" 란 뜻으로 주로 중풍병으로 번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풍병(中風病)은 뇌에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는 병인데, "파랄뤼오"는 중풍병의 증상으로 연약하고 약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무릎은 무릎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근육이나 관절이 발달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적 상태가 연약한 무릎과 같은 상태에 놓여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성경에서 무릎은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무릎은 하나님을 향한 간구가 쇠약해진 것, 마비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향한 간구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3, "저는 다리"입니다. 
  저는 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똑바로 따라가기에는 힘든 다리입니다. 저는 다리는 달리기 경주를 하는 이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현저히 뒤떨어지든지, 중간에 포기하든지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 "저는"에 해당하는 헬, "콜로스"는 "장애인, 다리 저는 자"입니다. 이 저는 다리의 위험성은 "어그러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그러지다"의 헬, "엑트레포"는 "빗나가다, 벗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저는 다리의 위험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고 있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경주했던 "믿음의 경주"라는 바통을 믿음의 선진들로부터 넘겨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매일 삶 속에서 회복과 치유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 그리고 저는 다리로는 경기를 끝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는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피곤(疲困) 한 손과 연약(軟弱) 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곧은 길로 행해야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에 있어서는 손, 발, 무릎은, 전 존재, 인간의 전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으켜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를 고쳐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피곤한 손, 마른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연약한 무릎,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저는 다리를 고쳐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의지해야 합니다. 

  성서시대에, 예수님시대에 그러셨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우리의 피곤한 손을 붙잡아 주시고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 주시며 저는 다리를 고쳐 펴 주실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지쳐서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라도 오늘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끝내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시 지금 이 시간에라도 피곤한 손과 언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로 흔들리고 있다면 주님의 은혜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