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영혼의 닻(히 6:17~20) 본문
영혼의 닻
히 6:17~20
히6: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히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히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소망은 영혼의 닻 같다"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소망의 위치와 무게, 그리고 그 가치가 얼마만큼 되는가를 알려주는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닻'은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닻은 헬, '앙퀴라'로서 '구부러진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닻은 철로 만들어졌으며 닻 자루와 구브러진 두 가지의 형태를 띠고 있는 갈고리입니다. 형태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배를 한 곳에 떠 있게 하거나 멈추게 하기 위하여 줄에 매어 바다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구부러진 이빨과 같은 갈고리"를 말하는데, 모든 배에는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 '닻'입니다. 적어도 향해하는 배라고 하면 닻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배에는 작은 닻이, 큰 배에는 큰 닻이 있어야 합니다.
'닻'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4번 사용되었는데, 사도행전에서 3번, 오늘 본문 히브리서에서 1번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배의 향해와 관련되어 사용되었으며 '보호, 안전 안전장치'를 의미합니다.
배가 계획된 항해를 마치고, 안전한 항구에 도착하게 되면, 제일 먼저 취하는 조치는 닻을 물속 깊이 내립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큰 폭풍우가 몰아쳐도 배가 파선되거나,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켜 두는 역할을하는 것이지요.
옛날부터 이 세상을 바다에 비유하여 생각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생은 풍파 많은 바다에 일엽편주와 같습니다. 인생은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바다는 너무 넓습니다. 거기에 비해 배는 아무리 커도 바다에 비하면 너무 너무 작습니다. 그러므로 항해하는 배가 풍랑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은 얼마든지 위기를 만나 시련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영혼의 닻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우리 인생은 수 많은 풍랑과 파도가 많아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곳으로 떠내려가 버릴 수 있는데 우리를 닻 같이 붙들어주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내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소망을 잃고 부정적인 생각에 짓눌리면 타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 항해하는 배에 반드시 "소망의 닻"을 갖추어야 합니다. 다 비우고, 다 버리더라도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것은 "닻과 같은 소망"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부정적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하고 소망을 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소망의 풍성함을 가져야 합니다. 소망이 뭉게져 버리고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 인생 배에 닻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항구에 정박할 수 없습니다. 어느 곳에 고요히 멈추어 서고 싶을 때 가만히 설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탄 배가 로마로 항해하다 폭풍을 만났을 때 "닻"을 내렸습니다. 파도에 휩쓸려 가다 좌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영적 싸움의 한복판에서 소망은 '영혼의 닻'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세상에 흔들리다 난파될 것입니다.
소망이 한 사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소망이 한 사람을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소망이 한 사회를 건설하기도 하고, 소망이 한 사회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소망이 중요하고 힘이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 고난을 인내하게 하고, 소망이 어두움을 물리치게 합니다.
우리 "영혼의 닻인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바울사도는 우리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 62:5~6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했습니다.
없어질 소망이 아닌 썩은 소망이 아닌 참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썩은 소망은 영혼의 닻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참 소망입니다.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 내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변하지 못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18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하심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맹세로 자기 약속을 보증까지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을 우리가 "그런가 하여" 묵상하고 또 묵상하다 보면, 마침내 우리가 소망과 함께 안위를 얻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굳이 자기 약속을 '맹세'로 보증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실 맹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에게 맹세하실 의무가 전혀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맹세의 보증을 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오직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맹세의 보증을 하신 것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아무렇게나 던져진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된 맹세이며 보증입니다.
보증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틀림없이 증명하는 것입니다. 채무자가 채무를 변재하지 못할 때 대신 그 채무를 감당해서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냥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니라 보증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된 말씀을 그냥 좋은 말씀 듣는 정도로, 참고삼아 듣는 정도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무려 맹세로 보증하신 불변의 진리가 우리 믿음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와 보증해주신 말씀에 소망을 닻을 내려야 합니다. 닻은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바닥에 고정시켜서 어떤 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영혼의 닻인 소망을 붙잡고 있으면 어떤 위기와 인생의 파도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큰 안위가 되어줄 줄로 믿습니다.
이 소망은 '영혼에 닻'과 같아서 어떤 환란과 핍박이 와도 이 히브리서 저자가 히브리서를 기록하던 그 시대뿐 아니라 더 많은 유혹과 더 많은 어려움과 더 많은 환란이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도 이 소망이, 이 약속이 우리의 영혼에 닻이 되어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 견고한 닻이 되는 것은 결코 네 믿음이 강해서도 완전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약속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약속이 보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닻없는 배를 탄 사람들이 많습니다. 닻이 없으니 이리 떠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파선 당하게 됩니다. 영혼의 닻을 갖추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