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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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달라졌다(행 4:5~12)

유앙겔리온 2024. 4. 15. 17:31

그들이 달라졌다
사도행전 4:5~12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람이 특별한 만남을 가지게 되면 “달라짐”을 보이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서 달라진 삶을 살게 된 전형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달라짐은 그들을 빛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그 달라짐이 다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다시 등장하는 제자들은 이전의 달라짐과는 그 차원이 다르게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공의회에서 끌려가서 심문을 받으면서도 담대하게 예수를 증거합니다. 목숨 걸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외쳤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연고로 이들이 이렇게 제자들이 달라졌을까요? 이는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활신앙을 가졌고, 성령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의 힘이 아니라 부활신앙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생각과 의지가 아니라 부활의 주님과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 만나고 제자들”은 이전의 달라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범한 모습으로 달라졌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랬다면 우리도 그리 살아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그들이 달라졌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숨었던 제자들에게 달려와서 전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무덤이 비어 있다. 천사를 만났다"는 소식을 제자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수 생전의 말을 상기하면서 무덤으로 뛰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빈 무덤을 봤습니다. 이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은 급회전합니다. 개인적인 부활, 죽지 않고 다시 사는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과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과 교회가 보여준 것은 이전과는 180도 전혀 “달라진 것”입니다. 그들이 달라졌습니다. 불과 며칠전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예수님을 떠났던 제자들이었습니다.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요한)에 등장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 사도행전에 등장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지근지간에서 배우고 익히고 그를 따라다닌 인물들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고 있는 제자들은 칭찬 받기를 원했고, 인정 받기를 원했고, 높은 자리에 서 있기를 원했습다. 내 꿈이 소중했고 내 출세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갑자기 예수님께서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어떻게 도망치고, 어떻게 살아남아서,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떠나 그들은 줄곧 문을 걸어 잠그고 문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등장하는 제자들은 복음서의 제자들과는 전혀 딴판으로 달라진 제자들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했고, 전면에 나서서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부인하고 도망하고 숨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면에 나타나서 “우리를 보라” 소리지르고,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예수 외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했습니다.    

  베드로 요한, 그 겁쟁이들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받는 그 순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담대하게 증거하였습니다.

  사실 성서시대에 산헤드린의 종교재판에 불리워 갔다는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위깁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사형을 결정하면 그냥 죽는 겁니다. 출교를 명하면, 유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산헤드린 공회 앞에 재판 받으러 서 있는 사람 중에 말 한마디 제대로 변변하게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제대로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닌 필부인데 그런 위험과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 당당함 때문에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놀라며 풀어주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달라진 제자들로 인하여 그들은 칭찬을 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 했지만 죽음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일단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성경적 기록이나 역사적기록이나 상황은 아주 명확합니다. 살고자 그렇게도 몸부림치던 그들이 모두 순수하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순교가 당연한 것처럼 순교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실패만 반복하던 제자들이 사도행전에서는 놀랍게 변하여 쓰임받게 되고 변화된 사람이 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달라짐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보았기에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며 순교시 가해지는 엄정하고 무서운 형벌을 견디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예수의 부활을 스스로 직접 보지 않고는 그런 행위를 할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의 사는 목적의 우선순위(priority)에 대한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 그들의 부활 체험이었습니다. 부활체험이 있은 후 제자들은 숨어 있던 곳의 그 문을 박차고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지만 울고만 있지 아니하고 제자들은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의 부활의 사실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라는 명칭이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라는 명칭으로 변경이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후로 달라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자는 헬라어로 ‘마데테스’입니다. ‘마데테스’는 “배우고 뒤따르는 사람” 정도의 뜻입니다. 그들은 스승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배움을 받은 자들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입니다.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배운 것은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이제는 가르침을 받은 모든 것들을 증거하는 곳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달라졌음을 인해서 세상이 주목하게 되었고, 그 달라짐으로 인해서 초대교회가 잉태고 출산을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앎과 삶의 터닝포인트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제자들의 변화, 제자들이 달라진 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지금 우리 중에도 복음서의 제자들처럼 다양한 실패가 우리에게 일어나 그 실패 때문에 낙심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삶의 터닝포인트로 삼기만 하면 얼마든지 사도행전의 사도들처럼 그런 능력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이 부활절이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고백이 이어지고, 불신자도 내가 부활하신 예수 때문에 달라진 것을 알도록 하는 그런 부활절이어야 합니다.

  부활 신앙은 제자들이 놀랍게 달라진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달라지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