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엡 2:14~22) 본문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엡 2:14~22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엡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한 가지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상의 교회,지역교회는 결코 '완성' 또는 '완전'이라는 의미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에 나타난 지어져가는 성전에 대한 개념은 참으로 뜻깊은 표현입니다.
바울사도는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교회는 완성된 곳이 아닙니다. 지어져 가는 곳입니다. 어느 교회도 완성된 곳은 한 교회도 없고, 모두 "공사중인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공사중'이라는 말은 지어져 가기 때문에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변화가 있고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며 전진해 가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희망이 없다가도 있을 수 있고 희망찬 교회였다가도 그렇지 못한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어져 가는 교회이기 때문에 완성되지 않았으며 미흡합니다. 실망할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 때문에 고민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성되지도 않았고 아직도 여전히 미흡한 교회를 보고 실망하고 낙심하며 상처받고 실족하면 안 됩니다.
더 잘 지어져가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가 지어져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입니다. 머리이신 주님을 중심으로 온 지체가 함께 지어져가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것, 그것이 교회입니다.
"함께 하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아까워 하거나 꺼려하면 사랑을 잃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함께 해주지 않을 때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모르게 됩니다. 친구가 함께 해 주지 않을 때 우정은 금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만 생각하고 함께 하는 희생과 함께 하는 일을 소홀리 하면 결국 자기 곁엔 아무도 없는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함께 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함께해서 지어져 가는 교회가 아닐 때 그 교회를 통해서 온전한 은혜생활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로서 우리 성도들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화평'입니다.
오늘 본문 13~17절에서 매절마다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가까워짐, 하나됨, 평안, 화평, 화목과 같은 말입니다. 성도들에 의해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은 화목케 하는 말씀입니다. 화목케 하지 않는 말씀을 복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화목케 하는 직책을 받았으며 그것을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가 해야할 일은 화목케 하는 사역인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평안할 때 든든히 서가며 부흥하여 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세상이 요란스럽습니다.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교회마져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영혼이 어디서 평안히 안정을 찾고 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교회가 평안만해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평안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평안을 위해서 성도들이 서로 노력도 해야 하고 희생도 해야 하고 인내도 해야 하고 좋은 성품으로 훈련도 해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복음을 그리고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을 그리고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흩어놓을까 합니다. 여기에 말려들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교회가 함께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어져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 첫번째 방법이 분열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불만이 싸이게 하고 서로 갈등을 빚게 하고 서로 수근수근거리게 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분열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를 닮기를 원하는데 사실 그 초대 교회에서도 분열은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는 분열하는 교회였습니다. 분열 때문에 에베소서도, 고린도전후서도 쓰여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그 대표적인 예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분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분열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이 차이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우월감, 우월성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여기에 대해서 소외감을 느끼고 열등의식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서로의 차이는 있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이요 하나님 앞에서 그 인권이 평등한 것이지 능력이나 방법이나 수단이나 그 하는 것이 평등한 것은 아닙니다. 능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어떤 종에게는 다섯달란트, 어떤 종에게는 두달란트, 어떤 종에게는 한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달란트는 재능이란 뜻입니다.
이 차이 때문에 우월감을 가져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교만하는 사람이 분열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 때문에 열등의식을 가져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못하니까 나보다 나은 사람은 전부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 떄문에 분열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차이를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차이를 적개심과 적대감을 키우는 이유로 생각하기 때문에 분열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암나사와 숫나사의 차이가 있음으로 해서 그 기능이 유지되고 필요를 체우는 것입니다. 남녀에게 차이가 있음으로 인해서 서로 끌리는 것이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차이는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차이와 다름을 분열의 조건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리고 그 차이를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성도와 성도끼리, 교회에 속한 모든 기관들과 부서들과 소그룹들이 서로 자기 역할을 다 하는 교회는 더욱 좋은 교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부족함, 모자람, 결핍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며 담을 쌓는 것은 교회를 무너지게 할 뿐입니다.
패망의 역사에는 늘 분열이 있었습니다. 분열은 패망의 선봉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역사에 보면 중국의 진 시황제가 북방의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토목 공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만리장성도 병사 한 사람이 적군을 통과시킴으로써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교회는 미완성의 아주 부족한 교회입니다. 지어져 가는 교회요, 완성되어가는 교회입니다. 미성숙을 지나치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장래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주 안에 있으면 성전이 되어 갈 것입니다. 머리되신 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21절, 22절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