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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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시 55:22)

유앙겔리온 2024. 2. 2. 20:19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시 55:22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성경에는 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생은 저마다 져야할 짐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짐지고 가는 나그네가 인생입니다.   

  인생은 주어진 과업과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합니다. 생활의 짐, 염려와 고독과 두려움의 짐, 죄의 짐, 선택 결정의 짐, 사명의 짐, 인간 관계의 어려움의 짐, 질병의 짐 등등을 지고 가야 합니다. 다 헤아릴 수 없는 영육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이 짐들 가운데는 더러는 가벼운 짐도 있겠지만, 대체로 '짐'이 가져다주는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수고와 무거움"에 있습니다. "찌들고 짓눌림"에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이런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짐진자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짐"의 히, 원어는 '예하브'인데, 그 본래 의미는(섭리에 의해서)'주어진' 것, 즉 '운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대신 져줄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롯이 자기가 지고가야 하는 몫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무거운 짐을 나 혼자가 아닌 함께 지고가거나 대신 지고 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예외적으로 복중에 복을 받은 자일 것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물리적인 짐을 맡기기 위해서 발명과 발전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진 짐을 대신 질 수 있는 온갖 것들을 만들어 제공하여 왔습니다. 위험하고 감당하기 힘든 것들은 짐승이나 기계를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눈부시게 목적을 달성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러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문제가 그렇게 다 해결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의 발명과 발전은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발명과 발전이 이루어지면 인간의 일면의 짐이 가벼워지는 면도 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더욱 인간의 짐이 많아지고 무거워 진다는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더욱 요동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짐을 사람에게만 맡기고 문명에만 맡기기에는 온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기자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본 시편은 다윗의 저작으로써 자기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의 모반과 자기가 가장 신뢰했던 자신의 모사이며 장자방이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모반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시편입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모반에 아히도벨까지 합류했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무거운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짐과 마음의 상처는 너무 무거워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휘청거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짐을 지고도 절망하지 않고, 요동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러한 짐을 여호와께 맡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번에도 스스로에게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맡기라(솨라크)"라는 말의 원어는 "솨라크"인데, (멀리, 세게, 벗어) '던지다. (아래로, 앞으로, 밖으로) 굴리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바위덩어리 같은 크고 무거운 짐을 굴리고 던지듯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 자녀의 문제도, 건강 문제도,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도 현재 일도 장래의 일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생활은 여호와께 내 짐을 맡겨야 하는 영적 개발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너를 붙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붙드시고"에 해당하는 원어, '쿨'은 '간직하다' 품다, 이해하다, 내포하다, 먹이다, 인도하다, 양육하다, 받다, 보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짐을 맡기는 자를 간직하고 품고 이해하시며 먹이고 인도하고 양육하시고 받아주시며 보존해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어떤 자들을 붙드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 짐을 맡기는 자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짐을 맡기기만 하면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시68:19절에 보면,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했습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께 짐을 맡기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짐을 맡기지 못하는 것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짐을 맡기는 사람이 의인이고 그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짐을 맡겼다고 하나 잘못된 이, 잘못된 곳에 맡기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인생에게 맡기고 물질에 맡긴 이들의 후회한 한숨소리와 신음소리가 가득한 곳이 이 세상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성실하게 져주시는 이에게 우리의 짐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맡긴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노래하고 자랑하고 감사하며 증거하고 선포하고 알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짐을 맡기고 그 짐을 맡아주시는 이를 찬송하는 자에게는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요동함(모트)"는 히, '모트'는 '흔들리다', '미끄러지다, 떨어지다, 운반되다, 던지다, 탈선하다, 부패하다, 움직여지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 그의 짐을 맡기는 자들에게 요동함과 같은 이러한 일들이 없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많은 짐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맡기지 말아야 할 이에게 맡긴 결과물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짐을 맡기고, 운명을 맡기는 것은 요동치는 터 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 자기의 짐을 맡기는 자만이 안전합니다. 여호와께 자기의 짐을 맡기는 사람은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 삶을 온전히 맡길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안정감과 소망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달리 안정감과 소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짐을 여호와께 맡기고 그 짐을 맡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짐을 붙들어 주셔야 요동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여호와께 맡기지 못하고 인생의 짐을 인생들에게 맡기고 물질에 맡기면 더욱 요동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짊어지고, 아무리 애써도 그 무게만 더 무겁게 느껴질 뿐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 짐을 맡긴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짐을 여호와께 다 맡기시고 요동하지 않는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