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출 15:26, 사 53:4~5, 살전 5: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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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치유하게 하소서(출 15:26, 사 53:4~5, 살전 5:23)

유앙겔리온 2024. 1. 29. 13:52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출 15:26, 사 53:4~5, 살전 5:23 

*출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총회가 설정한 주제에 따라 우리교회도 금년 표어를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라 정했습니다. 그래서 신년첫주일인 오늘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지으신 온 세상과 자기 백성들이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번영의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선하신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을 앓고 있고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고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대인관계는 비뚫어져 있고 그로 인하여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현장은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들로 가득합니다. 

  분쟁과 분열, 갈등, 전쟁, 온갖 종류의 범죄들, 기근, 생태계의 파괴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생산되고 또 재생산되고 있는 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면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야 할 인생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친밀해서는 안될 것들을 가까이 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친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것은 경제와 건강에 관련된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경제적인 것과 건강에 관련된 것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제정신을 잃을 만큼 몰입을 합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데 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악한마귀 사단의 개입이 있습니다. 하나님히고는 멀어져도 경제면, 건강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을 친밀하게 하며 사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을 수고로이 섬길 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은 거져 주어지는 것이나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아주 의도적이고 도발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친밀함이 절대 자연스럽거나 자동적이거나 빠르거나 쉽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적대적인 가운데서 발생하는 모든 병든 것들이 치유되지 않고서 이대로 간다면 자멸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때에야 말로 치유가 그 어느때 보다 절실히 필요합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영과 혼과 육신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며 치유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과? 평화와 나음을 위해서 그가 찔리고, 그가 상하고, 그가 징계를 받으시고, 그가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치유의 묘수, 치유의 묘약을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영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친밀히 하면 만사를 변화시킬 힘이 있습니다.  

  성경의 사람 중에 요셉이 보여준 그만의 특징적인 것은 누가 그에게 어떤 상처를 준다고 쉽게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참 좋은 성품의 사람입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태어나보니까 배다른 형제들에 둘려 쌓여 있었습니다. 그 형제들에게 끊임없이 미움을 받았고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위협과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잘못을 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음탕한 보디발의 아내가 뒤집어 쒸운 강간미수범으로 부끄럽고 억울하게도 않았도, 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가서도 그는 관리들의 배신을 당해 2년 동안 세상에서 잊혀진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만하면 상처가 많을 만도 하고 그 상처로 인한 깊은 질고에 빠질만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셉에게는 상처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병이 되지도 않았고, 그를 병들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아주 담백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친근히 하는 삶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두려움도 물러가고 절망이나 낙담이라는 산들도 그에게서 물러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요셉과는 달리 모두가 상처를 너무 잘 받습니다. 마치 상처를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금과욕조처럼 여깁니다. 상처를 뭐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고 심지어는 신성한 것으로까지 여기며, 우상단지처럼 끌어 안고서는 그 영향력 아래 굴복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죽을 때까지 우리고 또 우려 먹습니다. 

  요셉은 "치유하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서 항상 치유됨으로 전혀 상처 받지 않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리고서는 그는 그가 처한 곳에서 치유자로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요셉처럼 먼저 우리 자신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이 치료하시는 여호와께 원천적으로 치유받음으로 애초부터 상처가 없는 사람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치유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복과 감격을 온전히 회복하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치유받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의 가정, 교회, 사회, 민족, 열방, 더 나아가 생태계까지 치유하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목수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목수의 아들로서 목수의 일을 하시면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그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목수는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배도 만들고 집도짓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넣을 온갖 가구들도 만듭니다.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죽은 나뭇가지도 목수의 손에 잡히기만 하면 멋진 작품이 되어 아름답게 되살아납니다. 

  좋은 목수는 연결의 미를 알고 연결의 기술을 발휘하는 목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시고,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사물을 흔적도없이 연결해주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예수의 사람들, 예수를 주로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목수와 같이 선한 말 한마디로 이렇게 연결하는 사람, 소통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 치유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