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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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잠 13:12)

유앙겔리온 2023. 12. 13. 20:58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잠 13:12 

  잠 13:12절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오늘이 대림절(대강절)의 시작입니다. 대림절을 영어로는 “어드밴트(advent) 시즌”이라고 합니다. ‘어드밴트’라는 말은 ‘오고 있다. 도래하다’라는 말입니다. 

  대림절의 주된 정신은 기다림입니다. 내가 쫓아가서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나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기다려 맞는 것입니다. 

  대림절을 통해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것은 주님의 성탄절과 함께 새롭게 다시금 그리스도가 탄생되기를 대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말씀과 영으로 새롭게 임재하실 것을 기다리며, 마지막 때에 영광의 주님으로 다시오실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첫 성탄의 사람들은 다 기다림에 이력이 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다림의 고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한 평생 아기 예수를 기다렸던 시므온,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안나 선지자, 마리아, 사가랴와 엘리사벳, 목자들과 동방박사들 모두 다 기다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 이들의 기다림의 특징은 막연한 인간의 기대에 의한 기다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믿음으로 기다린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구절은 대부분 미래형 시제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미래형의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기다림의 인내를 가지며 그날을 맞으라는 예언적 구절들인 것입니다. 

  왜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까? 바라는 것과 이루어지는 속도가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원은 내가 간절히 바라지만 더디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잠 13:12절에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했습니다. 

  소원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소원이 더디 이루어질 수 있고”, 그러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연된 소망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약속하신 이에 대한 굳센 믿음이 필요합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는 가운데서 우리가 연단을 받게 됩니다. 

  지체되고, 더디 이루어지는 소망은 소망없음이 아닙니다. 단지 지체되고, 더딜 뿐입니다. 지체되고 더디다면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의 가장 무서운 취약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잘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지체되면 짜증을 내고, 안달을 부립니다. 기다리라고 하면 화부터 냅니다. 무슨 일을 벌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후회 막급한 결말을 만나기도 합니다.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잃고 떠돌던 유대인들은 땅을 살 때 적어도 삼백 년 후를 내다보고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일본인들도 나무를 심을 때 삼백 년을 내다보고 심는다고 합니다. 너무 조급해 하는 것으로는 저들의 근성을 넘어 설 수 없습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300년을 내 본다면 우리는 500년, 1000년은 바라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 우리는 소망과 동시에 인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연되면 낙심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꿈의 지연으로 인해 하나님을 공연히 비방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기간 중에, 다가올 미래를 위해 열심히 자기를 가꾸고 학습하며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기회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또 무엇이어야 합니까?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지체되고 지연되는 소망 때문에 마음이 상한 가운데서도 결코 기다림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단순한 기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대하는 욕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의 중심도 주도자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나님의 미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미래를 기다리는 것은 허사뿐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입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한 기대가 무너진 곳에서도 우리는 소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원동력입니다. 믿음으로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현실, 하나님의 미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현실, 내 미래, 내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 하나님의 미래, 하나님의 약속이니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림의 인생을 살 때 결국 선한 결말을 누리게 될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 기회도 인내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예상보다 훨씬 더 늦게 열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대림절은 기다림을 배우고 훈련하는 계절입니다. 금번 대림절 절기를 통하여 기다림을 확실히 배워 하나님의 때를 인내로 기다리며, 기다림의 사람들이 얻는 생명나무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원이 더디 이루어면 마음이 상하게 되어 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생명나무와도 같이 우리의 기분을 상쾌하고 새롭게 해줍니다. 그래서 있던 병도 떠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것을 확인해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간절히 소원한 것이 성취되는 것처럼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원을 성취한 사람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믿고 소망했던 오실 주님을 만났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실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습니다. 

  렘 29:13절에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하셨습니다. 

  소망이 지체되고 더디 이루어지면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 빨리 상하게 되는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이 단순한 자신의 욕망에 의한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된 미래라면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힘들거나 아프지 않도록 마음의 소원을 절절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초림하신 예수님은 더디 이루어진 소망과도 같으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오랫 동안 기다려 온 이들에게 약속대로 오셔서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심으로 인류의 생명나무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소망을 굳게 잡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까지 인내 하며 살아가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