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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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와 강가에 서서(스 8:21~23)

유앙겔리온 2023. 11. 26. 21:44

아하와 강가에 서서
에스라 8:21~23 

스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스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스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지난 수요일이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이었습니다. 우리 앞에 겨울철이 시작된 것입니다. 겨울은 긴장되고 준비가 많이 필요한 계절입니다.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더 많은 계절입니다. 그러므로 겨울을 잘 날려면 기도가 필요하고 단단히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끝까지 이겨나갈 각오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학사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를 아닥사스다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을 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은 에스라는 율법를 연구하고 그 율법을 준행하며, 그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것을 결심하고 함께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하와 강에 불러모았습니다. 

  아하와는 바빌로니아에 있는 유프라테스와 그 주변 지역을 가르킵니다. 에스라 제2차 포로귀환 공동체는 이 강가에 모여 자신들 앞에 도도히 흐르는 검푸른 강물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긴장이 되는 가운데서 비장한 결심을 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그들은 그 강가에 장막을 치고 그들의 안전한 귀한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그 강, 아하와 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 건너가야 할 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에스라가 아하와 강가에 서서 했던 일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받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에 뜻을 같이 할 사람들을 아하와 강가로 모았더니, 1차 포로 귀환의 10분의 1도 안되는 수가 에스라의 귀환공동체에 동참하겠다고 아하와 강에 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인 무리들을 살피는 가운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레위인, 즉 제사장들이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레위인들이 한 사람도 아하와 강가에 모여들지 않았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겪어왔던 역사적 상황속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차 포로귀환이 성공적이였다면 2차 귀환은 독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 왕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그들의 정착기가 희망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이 뻔한데 누가 자원하겠습니까? 결국 그들은 돌아가야 할 명분도, 돌아가야 할 상황이나 여건도 모두 희망적이지 않았다는 반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레위인들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8장 17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에스라가 "가시뱌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여" 아하와 강가로 38명의 레위인들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레위인을 보충하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일에 참여할 레위인 38명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쉽지 않았던 일이었으나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가능하게 되었음을 성경은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렇게 아하와 강가에 모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했습니다. 

  1차 포로 귀환에 비하여 돌아가는 수가 적었고, 되돌려 받은 진귀한 것들은 많은 가운데서 그것을 지켜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카드를 쓸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군대와 마병을 구하는 것을 그는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의 군대와 마병을 구하지 아니 하고 오직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것은 에스라가 평소에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며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권능과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하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능히 왕에게 구하여 안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상황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자신의 신앙고백과는 동떨어지게 왕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갖춰워야 할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람답지 못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아닥사드다 왕에게? 군대를 부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고향으로 떠나기 전에 아하와 강가에서 서서 금식하며 기도한 것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이며, 믿음의 선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겸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군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안전을 구한 에스라 공동체 즉 제2차 포로귀한 공동체를 "우리와 우리의 어린이들과 우리의 소유물들이 가는 길의 평탄함을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낙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고 응답되었습니다. 4개월간의 긴 여행동안 그 많은 사람과 성전에 바쳐질 그 많은 예물이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예루살렘에 안전하고 무사하게 도착한? 것입니다. 

  행정적으로 군사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죄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도가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왕에게 줄을 데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로 결단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하와 강가에서 에스라가 했던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들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해진 환경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앞 서서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 고생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와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려왔던 모든 것을 결연히 포기하고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자원하는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길이 비록 고생의 길이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하더라도 말입니다. 

  에스라는 충분히 왕의 군대와 마병을 구할 수도 있었고, 구하면 허락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 일은 쉬운 일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안전을 부탁하지 않고 하나님께 안전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에스라에의 신앙고백은 입술에 있지 않고 삶과 생활에 있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하나님에 대해서 고백한대로 하나님의 손에 안전을 맡기고, 그것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손이 제2포로귀한 공동체와 함께 해 주심으로 모든 위험에서 안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