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사람은 입김이로다(시 62:9) 본문
사람은 입김이로다
시편 62:9
시 62: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히브리 말은 한 문장에서 동일한 단어를 두번 이상 사용할 때는 강조를 의미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인생이 입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에 대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전도서 1장 2절에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강조되고 있는 '입김' 이란 말과 솔로몬이 이렇게 5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헛되다' 란 단어가 원어상으로는 똑같이 쓰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헤벨'이, 바로 '입김, 수증기, 숨'이란 말입니다. 물론 이 '헤벨'이 '공허함, 헛됨'이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겨울철에 입김을 유리창에 "호"하고 불면 잠깐 김이 서려 거기에 글씨도 써보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 보기도 하지만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여름에는 입김을 불어도 표시조차도 없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습니다. 고작 이게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생을 뭐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하나님 없이 바벨탑을 쌓고자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려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늘본문에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은 입김"이라고 할 때, 이 '사람'은 이전 개역성경과 KJV은 "천한 자" "Man of low degree"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등장하는 인생은 "높은자" "Men of high degree"로 번역했습니다.
비천에 처한 사람이나 존귀에 처한 사람,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입김이며 입김보다 더 가벼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 39:5 절에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 뿐이니이다" 라고 했는데, 여기서 '든든히 서 있다'는 말이? '나차브'인데 '전성시대'라는 뜻입니다 .
다윗왕의 전성시대, 그 놀라웁고도 영화로운 시점, 인생이 되고 싶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되고 누릴 때였습니다.
그도 인생의 전성시대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인생을 다 살고 되돌아 보니까 자기 인생의 전성시대에도 모든 것이 거짓되고 허사뿐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것은 전성시대일 때 오히려 죄인의 삶이기 때문에 한 낱 속임수에 지나지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것에 도취되고, 떠들법석하고, 성취한 것에 미친듯이 고양되고, 자랑스러운 날들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입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허사'라는 말도 예상했겠지만 역시 '헤벨' 입니다. '헛되다, 입김'이란 말과 같은 말이 쓰였습니다.
인생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전성시대일 때나 바닥을 헤메이고 있을 때에나 겨우 입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더 가벼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입김도 가벼운 것인데 그보다 더 가볍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가볍게 여겨야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세월이 흘러가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순간이 왔을 때, 희미해지고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 입김보다 더 가벼운 것들에 내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마치 실패한 인생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을 이기지 못하고 불안해 하면서 사람에게 끌려갑니다. 세상에 빨려들어갑니다.
세상에 막을 수 없는 것이 두 가지라 그러지요. 하나는 흐르는 세월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입니다. 가는 세월 누가 막을 수 있겠습나까? 죽음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잘 살아도,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우리가 죽고나면 화장이나 매장을 하게 되고 그러면 구더기 밥이 되고 지렁이 밥이 되고 잡초나 수목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조조는 죽기 직전에 72개의 가짜무덤(의총)을 만들라는 명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내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라. 내 무덤을 사람들이 파헤칠까 염려되는구나.' 이 마지막 유언을 마친 조조의 숨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이 그제서야 입김보다 더 가벼운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신처럼 무한 권력을 휘둘러서 고통을 안겨다 준 이들이 두렵고, 역사가 두려워서가 아니었겠습니까?
나는 신분이 높기 때문에, 나는 가진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으니 입김에 지나지 않는 너보다 내 인생이 훨씬 중하고 훨씬 더 크다고 여기도록 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진노의 날에는 무익할 뿐입니다.
사단의 부추김에 빠져 자신이 입김뿐이며 입김보다 더 가벼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한 사람의 결말은 주님의 진노의 날, 심판의 날에 무익한 것만 지니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어가면서 성공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잘못한 것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이 입김이요 입금보다 더 가벼운 존재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낮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가 없습니다.
시편 39:11절에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했는데, 여기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이 부분은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참으로 사람은 한 번의 입김에 불과합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어떤이의 인생도, 그 부귀영화도 한번의 입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벌써 오래 전에 끝난 싸움입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허사요 입김이요 헛되다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분토와 같이 여겼고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것보다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리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불구하고 우리는 매번 속습니다. 포악에 끌려가고, 세상 것에 허망해지고, 물질에 마음을 둡니다. 세상에 빨려들어가고 맙니다.
그러므로우리 입에 입김이 붙어 있을 때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두려워해야 할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번의 입김에 불과한 사람, 거짓된 사람, 허망하고 불의한 권력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보통사람이든 높은 신분의 사람이든 그들을 입김보다가볍게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지하기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의지했기 때문에 인생을, 세상을 입김으로, 입김보다 더 가볍게 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인생이 입김에 불과하고 오히려 입김보다 가볍움을 깨닫는 사람만이 매일 매일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