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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잠 8:34~36)

유앙겔리온 2023. 10. 15. 19:52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
잠 8:34~36 

잠8: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잠8: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잠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 있다고 했습니다.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를 복이 있는자"로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을 가까이 해온 성도들이라면 "문과 문설주"는 성경에 아주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어서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과 문설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형성은 출애굽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10번째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도록 했습니다. 그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집은 죽음의 사자가 유월할 것,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넘어가리라 약속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바른 문과 문설주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과 문설주'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이 주신 계명의 말씀을 순종하라고 명령하시면서 그것을 가까이 보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를 정해준 곳이였습니다. 

  이곳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주자"를 설치한 곳이 된 것입니다. 

  '메주자'는 신명기 6장 4~9, 11:13~21절의 말씀이 기록된 양피지가 들어있는 작은함입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이 말씀을 가르치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이 말씀을 암송합니다. 

  이 쉐마에 해당하는 말씀을 담아 문설주에 설치하고서는 들어가거나 나가면서 입맞추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설주와 메주자'는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문과 문설주'를 지나면서 이 메주자를 어루만져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사는 곳에는 다른 어느 곳보다 메주자가 설치되어 있는 문과 문설주 부분은 손떼로 인해서 반질반질합니다. 

  그러니까 문과 문설주 곁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문과 문설주 곁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기다리는 심령이십니까? 지금 말씀의 시간에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가 하면 문과 문설주는 '자원하는 종'의 귀를 뚫었던 곳입니다. 

  종 중에 때와 기한이 차서 자유로울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으나 살다보니 자기가 섬기는 주인이 너무 좋고, 나가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스스로 주인의 종이 되어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결심이 서는 사람들이 구약시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서 행하는 규례를 정한바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원하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의 의사를 주인이 받아들여줘서 그를 문과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다가 귀를 데고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원하는 종이 되는 표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의 귀가 그 주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특화되어 열려져 있음을 가르킵니다. 어떤 경우라도 그 주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되겠다는 결의이며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귀가 뚫여 자원하는 종이 서 있어야 할 위치는 언제나 "문과 문설주의 곁과 옆"이여야 했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종은 주인의 명령을 듣기 위해 문과 문설주 옆에 날마다 언제나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종은 그 어떤 것도 스스로 하지 않고, 오직 주인의 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의 말씀을 듣기 위한 위치에 서야합니다. 그곳이 바로 문과 문설주 곁과 옆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원하여 종이 된 사람은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주인의 집 문과 문설주 곁에 서서, 주인께 귀를 항상 열어두어야 합니다. 

  누구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지에 따라서 어떤 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집 문과 문설주 곁과 옆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고,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생명과 은총이 그분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인 주님의 집 문과 문설주 곁과 옆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자에게 오늘 본문 35절에서 "나를 얻는 자"가 되게 하신다고 했으며, 그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의 집, 주의 나라의 문과 문설주 곁과 옆에서 기다리지 않고 세상 즐거움을 위하여 음녀로 표상되는 이의 문과 문설주 곁에서 방황하는 자는, 오늘 본문 36절에서 "나를 잃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했고, "나를 미워하는 자"이므로 그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하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무슨 우매함이 있을까싶어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는 인간이, 그것도 미개한 원시적인 인간들이 만들어 유전시킨 각종의 헛된 우상을 섬기면서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현대인들의 자만으로 쌓아올린 과학과 물질의 우상을 섬기며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여! 주여! 하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집의 문이나 문설주에 보혈의 피를 바르고 살지 않습니다. 주님의 집의 문이나 문설주 옆에 서 있지 않고, 그곳에서 겸손히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귀는 송곳으로 뚫여져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욕심과 의도대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답지도 않는, 교회답지가 않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만들어지게 되고 현저히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인식하고, 깨달아 알수 있도록 문과 문설주 곁과 옆에 서서 먼저 자원하여 귀를 뚫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귀가 뚫린 그 집의 문과 문설주 곁에 서 있고, 그 분을 향하여 두 귀가 열려 있도록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