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심히 넓으니이다(시 119:96) 본문
시119: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오늘 시편 119편 기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에는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몰두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겸손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에는 다 끝이 있고 한계가 있고 경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도 유한하며, 세울 수 있는 고층 빌딩의 높이도 넓이도 유한합니다. 인류가 가볼 수 있는 별들도 유한합니다. 또한 우리의 지식도 유한하며 우리의 생명 역시 유한합니다.
이것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 현명한 믿음의사람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유한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만큼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 만이 "심히 넓으셔서 끝이 없으십니다."
여기 심히 넓다고 할 때 '심히'에 해당하는 "메오드"는 "매우, 많음, 굉장히, 대단히, 풍부, 엄청나게"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나님은 이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렇다고 간단하게 판단하고 확정지어버리는 순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를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를 형편없는 유한의 세계로 끌어내리는 잘못을 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과 앎으로 다 경험할 수 없는 넓으시고 광대하시고 깊음이 끝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경험의 세계에 대한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인류가 모든 것들을 총동원하여 그 넓으신 하나님을 경험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내어주신 한쪽 품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선지자는 사 40장 12절 말씀에서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퍼 낼 수 있습니까? 한 뼘, 두 뼘으로 하늘을 잴 수 있겠습니까? 누가 땅의 티끌을 되로 퍼 담아 놓을 수 있습니까? 접시 저울로 산을 달아볼 수 있습니까? 막대 저울로 언덕을 달수가 있습니까? 그 누구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책 한두권 읽었다고 해서, 책 한두권 펴냈다고 해서 지식을 다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지식의 세계는 너무 넓고 깊습니다.
망망한 대해를 바라보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수평선은 고작 4.5㎞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시력은 독수리의 시력에 5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의 범위는, 보통 20Hz~20kHz의 주파수 대역이라고 하는데 이는 박쥐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아는 것이 어느 수준인지 그 진상을 알고 나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우리는 존재론적인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능력이 유한하고 끝이 있기에 이 땅에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의 시력이 10배만 밝아져도 더러운 식기와 식탁을 보고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침대나 소파에서의 생활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충이 바글바글하고 세균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는 손을 잡고, 얼굴을 쳐다보며 기분 좋을 수가 있을까요?
또한 고주파의 영역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떤 일에 집중하거나 잠자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하고 적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머리로써는 완전히 다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넓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떠한 경우에 있든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가르치실만한 충분한 능력이 되신다는 의미이십니다. 그 수와 그 능력이 끝이 없으며, 그 인자하심이 끝이 없으셔서 용서하지 못할 죄악이 없으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이 넓으심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하나님의 심히 넓으셔서 끝이 없으신 혜택과 은총을 받아 누닐 수가 있겠습니까?
광대하시고 넓으셔서 끝이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 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내 뜻, 지극히 작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생각을 모두 버리고 심히 넓으셔서 끝이 없으신 주께로 거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말씀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하지만 아울러 완전한 말씀 이해에 이르지 못한다는 자각에 따른 겸손함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히 넓으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가둬두는 습관은 믿는 자가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습관이며 불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들은 한결같이 성서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크고 넓어서 받아들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이적들이 그렇고, 인도하심이 그렇고,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어진 말씀들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넓으심이 끝이 없으심을 모르고 초라하고 작게 여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본성을 최고로 끌어올리려는 세력이 바로 사단의 세력입니다. 이 본성과 세력에 사로잡혀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광대하시고 넓으셔서 끝이 없으신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얼굴을 들고 우리의 손을 내밀어 뼡쳐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크고 위대하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무한한 신비의 세계를 열어놓고 끊임없이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풍성함을 인정하고 사모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며 경험하는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넓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고 경험하며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일, 더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그것을 기도하고 찬양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광대하신 하나님, 넓어서 끝이 없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