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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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러하였더라(욥 1:1~5)

유앙겔리온 2023. 9. 6. 21:38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 1:1~5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1:2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욥1: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욥1:4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욥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오늘 본문 말씀은 욥기의 주인공인 욥을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 자녀들이 생일잔치를 하면 항상 다음날 번제를 드려 자녀들을 성결하게 하는 사람, 그는 동방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 받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이러한 흠모할만한 행위가 단회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항상 그리했습니다. 그는 남보게 힘겨웠을 일들을 지속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내면의 마음과 외면의 행위가 한결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져도 한결같았습니다. 지칠만도 하고, 한두번 삐칠만도 하고, 짜증스러울만도 한데 그는 항상 그렇게 한 것입니다.  

  좋은 일은 단 한 번이라도 하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 받기 위해서는 지속성, 항상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일때, 항상 그렇게 할 때, "그 사람 본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평가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한 순간의 일이 아닙니다. 한 평생 걸리는 일입니다. 모든 날에 걸처 걸어가는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욥은 일상적인 삶에서도 그렇했지만 수많은 고난 앞에서 "여전히"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길를 지켰습니다. 

  욥의 이런 꾸준함을 성경은 "온전함"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 온전함이야 말로 도덕적인 의미가 아닌 끈질김이며, 변함없음이며, 한결같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욥과 같이 온전함을 잘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일괄성을 가진 인물이 있습니다. 미련할 만큼 항상 같은 마음, 같은 행동, 같은 모습이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노아입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데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덩어리의 만족과 쾌락을 위하여 잘도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에 한눈팔지 않고 집중했습니다. 

  120년 동안 어떤 일이 노아에게 일어났을까요? 성경에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시대의 악함 속에서 노아가 겪은 일은 아마도 상상 이상의 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런 일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곁눈질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웃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방주 만들기를 충성스럽게 완료했습니다. 

  노아는 ‘일정했습니다. 믿을만했습니다.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변치 않았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이 '항상'이 문제입니다. 끈기 있게, 지구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앞에 모시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일어서다가도 주저앉아버리고, 가슴에 불길이 점화되어 타는 듯 하다가 꺼져버리는 이 연약함,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꾸준함이 우수함입니다. 우수하지 않는 것은 꾸준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꾸준하면 탁월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도 꾸준하지 못하다면 결국 열등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마련입니다. 일시적 흥분상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꾸준함을 갖지 못한 열정은 열정이 아니라 잠깐의 뜨거움에 불과할 뿐입니다. 순간의 객기처럼 느껴집니다. 꾸준함을 가져야 합니다. 뜨거움이 지속성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열정입니다. 성품입니다. 

  우리가 청해야 할 은총은 바로 한순간 불꽃 튀듯 번쩍이다 사라져버리는 그런 순간의 뜨거움의 은총이 아니라 바로 항구함의 은총, 항상성의 은총, 즉 꾸준함의 은총입니다. 

  주님의 성품이 한결같음이며, 일관성이며 꾸준함입니다. 삼상 15:29절에 보면 "이스라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했습니다. 

  주님께서 성실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성품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한결같음입니다. 

  그래서 항상성의 은총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 6: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했습니다. 노아가 당시 사람들에 비해 신앙과 윤리가 탁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그 일은 결코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처음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시작한 그 길을 매일같이 마지막까지 걸음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려움과 수고가 따릅니다. 그러나 크나큰 기쁨도 따릅니다. 

  지속하는 것, 항상 그렇게 하는 것, 그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미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꾸준하게 무엇인가 할 때면 주변에서 여러 잡음이 들려 오게 됩니다. 자존심이 상할 이야기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도 있습니다. 이 때 그런 것을 이기고 "항상 이러한 사람"이 되는데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됩니다. 

  마부작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일, 낙적천석 처마의 빗물이 바위를 뚫는 일, 우이공산 호미나 삽으로 산을 옮기는 우직한 사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약삭 빠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리 저리 패거리를 만들며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말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믿음 생활을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욥처럼 "항상 이렇게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노아처럼 한결같아야 합니다. 

  좀 더딜지라도 '매일 꾸준히'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해내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욥이였습니다. 욥처럼 그 삶에 한결같음이 있는 사람은 욥의 결말처럼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