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결박을 푸셨나이다(시 116:16) 본문
결박을 푸셨나이다
시 116:16
시116: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오늘은 우리 민족에게 꿈결같이 주어진 8.15 해방기념주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에 나라가 일본의 결박으로부터 풀려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한국교회에서는 매년 8월 둘째 주일을 해방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우상숭배의 중심지인 거라사 지방에 흉악한 군대귀신들려, 오랫 동안 옷을 입지도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두덤 사이에 거하는 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귀신에게 결박당한 아이가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바람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그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실 것을 간청받는 일도 있었습티다. 그리고 일곱귀신들 여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단의 탐욕에 결박당한 이들의 상태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결박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사회에서도 흉악한 것에 결박당하여 자신도 모르는 상태속에서 죄악된 일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그래도 가장 안전 하다고 자부했던 것이 점점 불안으로 바뀌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흉악한 것에 결박당하여 있는 것과 넘어짐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실족하여 넘어지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박 당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박당하지 않고 어떻게 넘어지는 일이 있겠습니까?
'결박'이라는 말은 '몸이나 손 따위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음' 을 의미합니다. 결박은 현실 속에서 꼼짝달삭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결박이 단단히 조여자고 묶여지게 됩니다.
결박당하여 있는 사람이나, 결박당하여 있는 짐승을 보면 그것은 참으로 불쌍하고 불행한 모습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결박에서 '풀려난다'는 것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치 아니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를 묶는 많은 '결박'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도 사탄과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결박하려 합니다. 물질뿐 아니라 몸과 우리 영혼까지 말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결박당한 이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박의 줄을 잡고 있는 세력에 의해서 이리저리 넘어지기도 하고 악한 일들을 서슴없이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결박 당하게 되면 결박을 당할수록 자신이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 피해자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결박에서 풀어나려는 의지도 없고 풀어날려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자신이 결박되었다는 것과 그 결박에 의해서 자신이 지금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결박에서 풀려나려고 시도하면 그 결박의 무서운 힘을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결박에서 호락호락 풀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이 흉악한 결박에 묶여 있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결박에서 풀어주시기 위해서 안달이 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결박당하지 말라는 경고이며, 결박을 당한 자를 기여히 풀어주시겠다는 약속이며, 결박당한 자가 풀림을 받은 간증이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인생들의 결박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말씀으로 역사해 주셨으며, 선지자들을 보내주셨고, 끝내는 주님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 곧 결박을 풀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결박이 풀어지고 결박이 풀린자들의 자유의 함성과 기쁨의 고백을 들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이것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 시편기자도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결박을 풀어주신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자신을 묶고 있는 결박에서 풀어주신 여호와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결박을 풀어주신이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기자는 자신을 가리켜 "주의 종"이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했습니다.
시편시대에 '종'이란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시편기자입니다. 일반 짐승보다 조금 영리한 짐승에 불과한 것이 이 때의 종의 가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짧은 성경구절 한절에 종이란 말을 세반씩이나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망의 결박에서 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자원하여서 주의 종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죄와 사망에 의해서 결박당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탐욕과 죄악에 결박 당하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사탄에게 결박당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에 많은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것에 묶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그 결박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를 질병과 가난과 무지와 저주의 결박에서 풀어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결박에서 풀려났습니까?
우리의 결박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결박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엄청난 속량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는 죄의 종에 결박을 당하지 않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죄의 종의 결박에서 풀려나서 주의 종, 자유의 종이 되었다고 하면 오늘 시편 기자처럼, 그것을 자랑스럽게 선포하고 야물차게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주님께 그의 자녀로 그의 종들로 매여 있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 싫어하여서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려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시도가 우리를 더욱 흉악한 것에 결박당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결박을 풀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자는 외침과 그 시도가 우리로 하여금 흉악한 사단의 결박에 자신을 가져다 바치는 꼴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8절,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마귀의 일' 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을 죄의 종으로 삼고, 마귀와 그의 종들을 위해 준비된 지옥 영벌에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
창조주 하나님, 한 분의 결박을 기뻐하고 사는 것이 모든 결박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는 길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분으로부터 결박을 풀고 달아나려고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에 결박 당하려고 달려가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시편기자와 같이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고백하고 그분에게 두 손을 내밀어 결박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결박을 푸시는 하나님께 내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담대하게 나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결박으로부터 풀려나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와 찬송"은 '결박을 풀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행 16: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묶여 있던 결박이 풀어졌고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여기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는 가은데서도 결박이 풀리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