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 37: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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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 37:1~3)

유앙겔리온 2023. 7. 14. 17:56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시 37:1~3

시37: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37: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가 '의(衣), 식(食), 주(住)'입니다. 

  그 중에서 먹고 마시는 '식(食)'은 사람의 기본 욕구이자 생명유지를 위한 기본 문화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의미합니다. 불의를 먹고 사는 사람은 불의한 사람입니다. 성실을 먹고 사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먹는 문제를 다루는 말씀이 참 많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과 롯이 천사들을 대접한 사건, 그리고 출애굽과 광야생활은 먹고 마시는 일로 인하여 희비가 갈리는 사건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쳐 쓰러진 엘리야를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는 사건, 그리고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과 최후의 만찬 역시 제자들과의 마무리 식사 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성경 전체를 볼때 놀랍게도 음식에 관한 성구가 전체의 약 10%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이처럼 먹는다는 문제가 중요한 종교적 행사이며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디자인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모든 먹거리를 선택하고 그것을 조리하여 먹고 마시는데 있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지금 살아내고 있는 여름철은 먹고마시는 일에 바른분별과 선택 있어야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식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어디 그것이 육신의 생명을 위한 먹거리 뿐이겠습니까? 영적인 생명을 위한 먹거리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땅에 머물며 사는 동안에, 먹을거리 즉 "식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시편기자가 그 답을 주시고 계십니다. 3절 하반절에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나의 성실리나, 너의 성실이나, 우리의 성실이 아닌 "그의 성실하심"을 먹을거리, 즉 식물로 삼으라 하십니다.

  '그의 성실하심'은 곧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라함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실하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성실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에무-나(emunah)"인데, '신실하다' 혹은 '진리'로 번역됩니다. 

  에무나는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 '불변하심', '성실하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한 에무나는 배우자에 대한 정직을 지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 말이 사람에게 사용될 때에는 신실한 하나님을 닮은 견고하고 신실된, 한결같은 인격과 삶을 가르킵니다. 

  본문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것에 휩쓸리지 말고 이와 같은 '에무나를, 즉 성실을 밥먹듯 먹으라' 하십니다.

  오늘 세상은 '거짓, 눈가림, 꼼수, 요령, 탐욕' 이런 것들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잽싸게 이리저리로 이익을 쫓아 변신을 꾀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성실한 사람들은 당하는 것 같고 이용당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짓, 눈가림, 꼼수, 요령, 탐욕 이런 것들을 식물로 삼는 미혹에 빠집니다.  

  잠언 4:16-17에 보면, 땅에 머무는 동안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라" 했습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 불의를 먹을거리로 삼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됩니다.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기자는 너희가 어려운 일을 만날지라도, 누군가가 너희를 힘들게 할지라도 "악인의 분노, 불평, 원망을 식물로 삼지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는 것으로 식물을 삼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변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에 머무는 동안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잠시 머물다가는 땅입니다. 곧 영생의 삶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2절)했습니다. 

  사람이 누구나 처음부터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함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실하신 분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심에 있어서 성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성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성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에 성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시지 않으심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성실함이나 나의 불성실함, 그리고 너의 성심하이나 불성실함에 의해서 일이 유지되고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의해서 되는 것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 성실하심을 식물로 삼았던 모든 성서의 사람들과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다 그의 합당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성실하심을 식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서 55:1~3절에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먹거리가 무엇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양식 아닌 것,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먹을거리로 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확실한 은혜" 만을 식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 그의 성실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최고의 절정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고 죽으시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믿는 자는 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0:3에서,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이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며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의 결정판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고 살아야 할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