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감사함이 좋으니이다(시 92:1~3) 본문
맥추감사절
감사함이 좋으니이다
시 92:1~3
시92:1~3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모든 관계의 어그러짐과 파괴 가운데에는 음흉하게 도사리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이 그 가운데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이렇게 많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좋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 원인 중에 하나가 감사를 잃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나발의 집에 일어났던 일을 이 시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나발은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여 살고 있었으며, 그래도 그 시대에 목축기업가로 평가받을 만큼 기본적인 부요를 누리고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나발은 당대에 떠오르는 사람이었던 다윗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의외로 쉽게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다윗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고하고 감사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소유를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으나 감사할줄을 몰랐습니다.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오히려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사람들로부터 안전과 보호를 받으면서도 다윗이 인편으로 요청한 식량조차도 주기를 거절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나라의 유익을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그가 감사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어느날 갑작스럽게 하루 아침에 나발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의 이름 나발, 즉 어리석은 자란 의미대로 감사치 않다가 생명도 잃어버리고 부요함도 다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감사하면 많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감사를 회복하면 감사가 활성화 되면 많은 악한 일들이 선한 일들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영역 안에 존재하는 가장 효과적인 에너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중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에 놓여져 있는 가장 특징적인 표징은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감사 대신에 자신의 영혼을 뚫고 나오는 것은 불평과 원망입니다.
내 신앙이 얼마나 건강한가?
내 영성이 얼마나 거룩하고 성화된 것인가?
내 믿음이 얼마나 깊은가를 잴 수 있는 것은 "감사"에 달려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없는 신앙간증이나 감사없는 찬양이나 선행들은 자기 자랑일 뿐입니다. 그것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롬 1: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이들이 절대로 빠져서는 안될 것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 하는 것", "감사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자꾸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2)라는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함'은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잘한 일 중에 잘한 일이며, 가장 좋은 일 중에 가장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1-3절 까지를 하나로 묶어서 1절로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그만큼 이 말씀은 한덩어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요지는 "여호와께 감사함이 좋으니이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처음을 여는 말 "지존자여",에서 이미 영적 승부는 끝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존자"라고 부르는 순간 시편기자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지존자' 이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칭호입니다. 어떤 다른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높으시고 유일한 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입니다.
그 분에게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리고 감사하는 일이야 말로 인생으로써 가장 기쁜일이며 좋은 일입니다.
여기서 "좋으니이다"라고 번역한 말은 '토브'인데 "아름답고, 선하고, 좋고, 친절하고, 기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창 1장,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 "좋았더라"는 단어도 또한 이 '토브'가 사용되었습니다.
감사는 이처럼 받는 쪽도 감사를 하는 쪽도 다 참 좋은 일입니다. 감사에는 받는 쪽에도 드리는 쪽에도 좋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할 수만 있으면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요, 채무요, 바쳐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지불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지불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할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도 채무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같이 부당하고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고자 함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고 또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감사함은 우리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감사를 하는 것은 여호와께 더 많은 자비를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시는 "감사"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감사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어느 한 때, 어느 한 사건을 가지고서만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아침 마다 그리고 밤마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침과 밤의 의미는 그 해석의 범위가 무궁합니다.
빛과 어둠 가운데서, 시작과 마감에서, 형통과 곤고에서, 공간과 시간적으로 전부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감사, 저녁에도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며 좋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