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 5:11~12) 본문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 5:11~12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6월은 종교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순교자나 순국자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호국보은하고 애국애족하는 그런 달입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교회는 6월 둘째주일인 오늘을 '순교자기념주일'로 지키면서 순교신앙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지켜나가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피값으로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존중히 여기면서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인생이, 자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을 찾아서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인간으로는 실망스럽고 두려워할 일인,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객관적으로 누구라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기뻐할 일이나 즐거워 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슨 일을 당하고 만날 때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하셨고 그것이 복이라고 까지 하셨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나로 말미암아"입니다. "나로 말미암아"는 '예수님 때문에' 혹은 '예수님을 위하여'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욕먹고 박해를 받는 것이라면 기뻐하고 즐거워 할 일이 절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되지요. 왜냐하면 내가 잘못해서 받는 것은 박해가 아니라 잘못에 대한 처벌이기고 댓가의 지불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주의 하고 부도덕해서 함정에 빠진 것은 실족한 것이지 박해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만 내세우면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않음으로써 당하는 그런 것은 박해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닌 것 때문에 당하는 것을 이리저리 끌어다가 박해라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과 죄악된 성품 때문에 당하는 욕이나 핍박은 박해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몰염치한 사람이 되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진정한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일로 인해서 박해나 핍박을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주의를 기울여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 저것 아무것이나, 모두 싸잡아서 당하는 것을 박해라 하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주님 때문에 욕먹고 박해를 받고 거짓으로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들을 때를 한정하여 박해라 한 것입니다.
진짜 박해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서 오는 고난입니다. 주를 위하고 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오는 고난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이 박해인 것입니다. 그것도 지나치게 부주의 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자랑할만 하지도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만한 박해도 아닌 것입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들기처럼 순결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지금 받고 있는 고난과 박해가 예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잘못으로 인한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함을 받았을 때 잠시 기도를 쉬면 박해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아니함으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단 한 번만 왕이 세운 우상 앞에 절을 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를 금하신 하나님 앞에 의를 지키기 위해 풀무불에 던져지는 쪽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자 함으로 인해서 당하는 것이 박해인 것입니다. 이렇게 당한 박해를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신 것입니다.
원시교회 최초의 평신도 순교자인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성경은 증언해주고 있으며, 그의 입술에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순교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42명의 로마황제의 박해를 잇달아 받고, 또 받았습니다. 어떤 황제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부은 후 불 지른 바 되어, 사람의 몸이 마치 장작과도 같이 탔다고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가장 참혹한 박해를 시도한 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밀초 대용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공공연하게 예배할 수 없어, 동굴에 들어가, 비밀로 예배를 드리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곳을 카다콤이라고 하는데, 로마시의 지하에는 카타콤이라고 하는 곳이 30곳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400만명의 해골이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법률을 무시하고, 비밀 결사를 했으며, 황제를 예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2대의 왕에게 끊임없이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박해는 로마에 있어서 310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박해로서는 기독교를 어찌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은 박해하는 나라가 기독교의 심장이 되었고, 박해하는 자가 신실한 예배자가 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는 실로 박해나, 그 어떤 것에 어찌되지도 않을 뿐더러, 최후의 승리를 보여주고야마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그 중심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피흘려 죽어주신 그 주님께 말씀하신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는 말씀이 함께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초기교회는 이처럼 박해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교회였습니다.
박해 가운데서 순교하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실존적인 모습"에서 최후 승리가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그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교회보다도 박해로 인해서 순교의 피가 뿌려진 교회이며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분들도 역시 박해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셨던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들도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박해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적대시를 하고, 정죄를 하고, 자신 앞에서 깨끗이 쓸어없애버리겠다고 안색을 바꾸고, 마음을 상하는 것으로는 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핍박과 박해를 당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순교신앙을 가진 성도들로서만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 "기뻐하고 즐거워 했던 초기교회 성도들"처럼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