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요 13:14~17) 본문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요 13:14~17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그의 제자들에게 행하신 본문에 소개된 사건을 묵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 당시 성서의 땅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운동화나 구두가 아닌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는 집 안에서나 사무실보다 바같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온종일 바깥에서 생활하다 보면, 샌들을 신은 발은 모래와 흙먼지로 뒤범벅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자연히 발은 신체중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땅과 가까이 있는 지체요, 또 아래쪽이 있다 보니, 가장 불결해지기 쉬운 지체임에는 분명합니다.
여성의 하이힐의 유래도 여러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화장실문화가 발달되지 않았을 때에는 길거리가 오물투성이였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하이힐을 남성이나 여성이나 신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서시대의 유대 사회에서는 정결의 뜻으로 신발을 벗고, 수족을 씻고 거룩한 곳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환대의 뜻으로 자기 집에 찾아든 손님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고, 노예나 종들이 주인이나 귀인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상식적인 예절이었고 전통이었고 관습이었습니다.
복음서에 신들메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신들메는 샌들의 신발끈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신들메를 푸는 것도 종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발 관리는 천한 사람들이 하는 가장 천한 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장 낮고 천한 자가 해야 할 이 일을 다른 이도 아닌 "주와 또는 선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늘같이 여기는 "주와 선생님"이셨습니다. 구원자이시며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아야 마땅하실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친히 무릎을 꿇어 자신을 낮추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섬김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데는 사실 배경이 있습니다. 어느날 자신들 사이에서 서로 "누가 크냐, 누가 더 위냐?" 쟁론하고 다투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목격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저렇게 만들려고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가르치신 것이 아닌데 하신 생각이 저녁밥을 먹는 가운데서도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밥을 드시다 말고 밥상을 뒤로 물리시고서는 친히 수건을 가져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체우셔서는 제지들 앞에 무릎을 꿇고 "주와 선생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참 주와 선생이란 누구이며 주와 선생이 된 이들이 어떻게 하는 자인가 스스로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누가 크냐 때문에 다툰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는 자임을 모본으로 보여주면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지금까지 유대전통에서 굳건하게 자리 잡고있던, '섬기는 자가 종'이라는 가치관을 전복시키시고, '섬기는 자가 주인'이며 스승이라는 가치관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가치의 전복"은 성경을 통한 성령 역사의 핵심적인 방향입니다. D.L 무디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의 지식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고 했습니다. 그 삶의 변화란 바로 가치전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시대에 성서의 땅에서 '주와 또는 선생'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또 어떠했습니까? 주와 선생은 당시에 당연히 높임을 받고 봉사를 받고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이 식사나 잔치에 초대를 받으면 그 집의 종이 신들메를 풀어주고 발을 씻겨주고 닦아주는 것은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연히 제자들에게서나 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서 "발씻음받는 써비스"쯤은 받아야 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 전통을 버리시고 하루종일 걷고 뛰어다녀서 더러워질데로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주와 또한 선생이 되신" 주님께서 저녁식사를 하는 가운데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루시고서는 손수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어주시며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고 계신지 직접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유대사회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더 좋은 제자가 되고, 자신들이 장차 선생노릇을 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적지 않게 영향을 받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리를 펴고 남을 지배하는 사람이 행복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의 발을 씻기는 일은 재물을 늘리거나 지위가 올라가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못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도 자체를 못해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주인에게 아무리 좋은 대접을 받는다고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영광을 받는다고 해도 그를 보낸자보다 크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통념과 기준에 붙잡혀 있지 말고 예수님과 같이 세상의 통념과 기준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
누가 크냐고 염치도 없이 다투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들의 발을 씻어주심과 이렇게 하는 것이 옳고 마땅한 일임을 말씀하실 때,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무지, 불결함, 못남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감싸는 것이 "주와 선생이 되어"해야 할 일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와 선생'은 발과 같이 못나고 냄세나는 것을 들추어11 소문내고 조롱하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품어숨기고, 고치고 깨끗하게 해주기 위해서 발을 씻어주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발을 씼어주는 것이 싫으냐 좋으냐의 문제나 전통적인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옳다고 하신 일이며, 주님이 본을 보여주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복이 있으리라 약속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교회교육의 환경이나 교회성장이 불투명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입달린 사람들은 그 부정적인 의견에 한마디씩 더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교회에서 먼저 믿는 이들, 주와 선생과 같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주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본을 보이시고 하셨던 것처럼 그 못난 발과 냄세난 발을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씻겨주시고 닦아주셨던 것처럼 하는 이들이 있다면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한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우리 복음적인 성도들과 교회는 "주와 또한 선생이 되어" 섬기신 예수님을 본받아 발을 씻어주는 이들을 알아보고 존경과 감사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