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시 69:29~36) 본문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시 69:29~36
시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시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시69: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69:32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시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시69:34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시69:35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시69:36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
복음서에 보면 이미 부활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자신들의 고향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표정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고 했습니다.
실망과 슬픔의 빛을 띤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의 모습,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시편기자인 다윗도 본문에서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시편 69편은 다윗이 원수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조롱당할 때 쓴 시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가 "가난하고 슬픈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결코 가벼운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운지, 69:1~3,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즘 대중적으로 쓰이는 말로 한다면 '멘붕' 바로 '멘탈붕괴'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되면 보통 어떻게 됩니까? 많은 경우 자기 연민과 자기 상처에 빠집니다. 두려움, 낙심으로 인해서 부정적이고 낭비적 태도를 보이기 쉽상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을 인해서 예수님을 향한 꿈들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슬픈빛을 띠고 피곤하고 허망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기자인 다윗은 당연히 그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런 감정과 의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 무릎꿇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그 역경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는 주된 이유이기도합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가난하고 슬픈일을 만났을 때,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려는 몸부림조차도 사치스러운 때에, 도리어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소생하게 하고 마음을 소생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각성시키시고 흥분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무감각하게 잠들었던 그의 백성들과 종들의 잠든 영을 깨우시며 깨달음을 주셔서 하나님께 순종케 이끄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지만 우리의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했습니다.
이 32절 말씀을, 공동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에서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비천한 사람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을 찾는 자들아, 너희 마음 부풀게 하여라."
현대인의성경에서는, "가난한 자가 이것을 보고 기뻐하리라. 하나님을 찾는 자들아, 용기를 가져라."
오늘 시편기자인 다윗은 가난과 슬픔에 직면한 상황을 그냥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같은 상황을 그냥 주실 리가 없다는 확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인정하는 것보다 더 훨씬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다윗과 같은 가난하고 슬픈 상황을 만날지라도 도리어 "마음을 소생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소생하다"라는 말 "하야"는 사역동사로서 "회복시키다. 기운을 살리다. 살게 하다. 생명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재생시키고, 마음을 살아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투자의 기회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가난과 슬픔의 일을 겪을 때 그 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마음을 소생케 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럴 때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에 "마음을 소생케 하는 일"을 힘써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소생케 할 수 있습니까?
30절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했습니다.
고난 속에 있는 자가 감사하기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위대하시다"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요?
감사해야만 마음이 소생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내 자녀와 후손들도 마음이 소생하게 되고, 참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은 어려운 일과 슬픈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엄습해 오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자기 몰입과 자기 파괴를 막아 주는 방부제와 해독제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됩니다(32절).
우리가 힘겨울 때, 다윗과 같은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소생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다른 어떤 희생으로도 드릴 수 없는 기쁨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31절을 보세요.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구원의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세상 어디에서도 해결 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는 상처와 아픔을 치유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자는 마음이 소생하게 되어 자신도 살고 타인도 살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