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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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택하라(신 30:15~20)

유앙겔리온 2023. 3. 30. 13:43

생명을 택하라
신 30:15~20

30: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30: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30: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30: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30: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3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사람은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지 모릅니다. 친구도, 배우자도, 동업자도 선택해야 하고, 학교도, 직장도, 사업도, 계속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을 잘하고 잘못함에 따라 인생이 귀하게 되기도 하고 천하게 되기도 합니다. 귀한 업적을 남길수도 있고,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도 생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가지의 선택을 올바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정말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고 귀하게 하는 것인지, 어떤 결정이 나와 내 자손을 살리는 것인지, 바로 분별하여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그의 백성들에게 '선택'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귀한 부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네가 살고 네 후손이 살기를 원한다면 사망을 선택하지 말고 생명을 선택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선택의 권고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권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더러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생명'이 과연 무엇이며 어떤 특징이 있기에 그렇게 하시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생명은 "따뜻함"입니다.
  "동물이 죽었나 살았나를 구별하는 가장 큰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체온"입니다. 생명에는 따뜻함이 있고, 죽음은 차가움이 있습니다. 모든 죽음에는 차가움만 있는 대신 생명에는 따뜻함이 있음이 어긋난 서로의 공통점입니다 . 

   우리가 많은 죽어가는 것과 죽은 것을 만져보고 느껴보지만, 그것은 한결같이 '차갑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죽음 체험 그것은 차가움입니다. 죽음은 차갑습니다. 그러나 숨쉬고 살아 있는 생명은 따뜻합니다. 

  그런데, 숨을 쉰다고 해서 다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생명은 그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찬 기운과 찬 바람이 느껴지고, 생각만 해도 추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시체 같은 사람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영육간에 살아 있다는 것은 따뜻함이 그 특징입니다. 따뜻함을 회복하고 따뜻함이 넘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절 세번째주일을 맞았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순절은 절기상으로 해빙기에 놓여 있습니다. 따스함이 주는 선물로 얼음이 녹고 강물이 흐르는 봄입니다. 죽은 나무등걸에 새순이 돋아나고 꽃이 피도록 준비를 할 때이며 이미 이른 것들은 꽃을 피우고 새싹을 티우고 있습니다. 

  이 해빙기는 우리 안에 있는 산 것과 죽은 것들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죽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겸손히 인정하면서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도록 간청하는 시기입니다. 

  죽음의 차가운 것들에서 돌아서서 따듯하고 뜨거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때인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생명을 누리지 못할 때 우리의 마음은 차가워 집니다. 그래서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분냄 등의 차갑고 어두운 것들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와 말씀에 힘쓰며 영적인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의 따뜻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래서 그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화평과 평강이 흘러나게 됩니다. 

  모든 고통에는 따듯함으로 쓰다듬어주어거나 따뜻하게 하면 대부분 풀어지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엄중한 죽음의 차가움만 있는듯한 전염병 같은 현실앞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 따뜻함의 소망이 생겨납니다.     

  2, 생명은 "부드러움"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굳어지고 날카로워지고 그래서 찌르고 찔립니다.
  봄에 나오는 새순들과 새싹들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릅니다.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점점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런 것들이 딱딱해지고 굳어지고 그러면서 늙어가고 죽어가게 됩니다.

  노자는(76장에서) "사람이 살아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다가 죽으면 단단하고 강하며 만물 초목이 살아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그게 죽으면 바싹 마른다."고 했습니다. 

  사람과 초목이 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의 몸은 부드러워도 늙고 병든 몸은 굳어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에선 아름답고 선한 말들이 나오고 덕스러운 일들이 꽃 피어납니다. 그러나 돌처럼 딱딱한 마음에선 악한 말들이 나오고, 악덕이 진동하고 창궐합니다.

  부드러운 것은 약해보이고 강팍함은 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태풍이 불어도 부드러운 가지는 꺾이지 않지만 단단한 가지는 쉽게 부러지고 맙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은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하게 하는 영입니다. 겔 36:26절에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돌같이 굳어진 "강팍한 마음" 이었습니다. 우리는 애굽왕 바로의 강팍한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절한 것이 바로, 바로의 강퍅한 마음이었습니다. 강팍한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면 부드러운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촉진합니다 . 

  3, 생명은 "움직임"입니다.
  "Motion is Life(움직임이 생명이다)"라는 말은 의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입니다. 생명과 움직임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엮여있습니다. 생명 없이 움직임은 있을 수 없지만 움직임 없이도 생명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생명과 움직임은 실질적으로 똑같은 것입니다(Life and movement are practically the same thing).

  봄이 왔습니다. 봄에는 생명의 움직임이 가장 분주합니다. 봄에 생명의 움직임은 가히 그 경이로움에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죽었는가 싶었던 나무가지에 새움이 트는 정경은 해마다 보아도 늘 새롭습니다. 마냥 겪는 신비로움입니다. 생명은 움직임입니다. 움직임은 생명의 표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없는 것의 특징은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이 붙어 있나 떠났나를 확인할 때는  움직임이 있는 여부를 확인합니다. 심장은 뛰고 있는가?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는가? 숨을 쉬는 움직임이 있는가를 먼저 확인합니다. 그것이 생명이 살아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생명있는 것이나 생명 없는 것이나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로서는 그 구성 차이는 크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극명한 차이가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움직임의 여하입니다. 죽은 자는 움직이지 못하고, 산자는 움직이며, 죽은 자는 생명의 능력이 없고, 회복하는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능력한 흙덩어리로 변하기 시작하고, 산자는 무한한 생명의 능력과 회복의 능력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충만한 어린아이들은 움직임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고갈되어가는 노인들은 움직임이 느려지고 더뎌집니다. 

  생명 있는 것은 에너지를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고 움직입니다. 죽은 생명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죽었는데도 움직인다면 다 놀라서 뒤로 넘어지거나 다 도망갈 것입니다.

  움직임이라는 키워드는 인간의 영육간의 건강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움직임은 생명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고 특징 중에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 사람은 움직여야 하고 죽은 사람은 움직임이 없어야 합니다. 성경에 생명이라는 말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 움직인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생명을 가진 자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움직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사람이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이나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생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따뜻함과 부드러움과 움직임이 넘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족한 가운데 있습니까?

  따뜻함(溫)과 부드러움(柔)과 움직임(動)은 생명의 바탕입니다. 차갑고 딱딱한 곳에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살아있던 생명마저도 시들고 병들게 됩니다. 죽어가던 것들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슴으로 품어주면 살아납니다. 따뜻함과 부드러움과 움직임인 생명을 선택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