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나의 걸음이(시 17:5) 본문
나의 걸음이
시 17:5
시17: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사순절 절기의 길과 삶을 살고 있고 또 그 길을 걸어가야 하고 또 이 절기를 잘 살아내야 할 사명에 놓여 있습니다.
인생은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입니다. 헬라어에 '걷는다'는 말 '페리파테오'는 '산다'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는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걷는 것과 인생을 사는 것은 결국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그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과 발자취를 보면 그가 어떤 존재이며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명쾌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걸음을 보면 '그는 과연 믿음의 사람이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시편 기자가 가는 인생길, 믿음의 길, 주의 길에는 꽃길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억울한 비방과 부당한 고난으로 힘겨워하기도 하고, 낙심되고 낙망될 때도 수 없이 많았고 그래서 실족할 뻔한 위기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다고, 장밋빛 대로만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기대로 신앙의 길을 간다거나 주의 길을 가고 주의 종의 길을 간다면 고난이 닥쳤을 때, 낙담하고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실족할 수 있습니다.
혹이 예수 믿으면 꽃길만 가게 되고 장밋빛 대로만 걷게 된다고 홍보를 받고 전도되어서 교회를 오고 출석을 했다면 일응 그런 측면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인생길을 갈 때 어떤 경우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길을 굳게 지키게 되고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않으면 상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길과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더라도 한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했습니다. 하ㅏ님을 버리지 아니하며,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면서 "주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우리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그 길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까?
그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주의 길"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지키고 실족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의 길'은 "성육신적인 길이며, 고난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을 가다가보면 주님이 겪으셨던 것처럼 땀방울이 피방울처럼 기도해야 할 수도 있고, 혼자 버려진 것처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시간은 참으로 깊은 갈등과 고뇌의 시간일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누구나 믿음으로 산다고 하고 주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면 어지간한 경우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기 쉽습니다. 주의 길을 떠나버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시편기자가 살았던 성서시대와 견준다면, 그리고 그 어떤 다른 때와 견주어본다면, 현시대에 있어서 인생의 길은 우리가 입으로 다 묘사할 수 없으리만큼 더욱 위험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의 길을 갈 때 험한 것들이 앞 길을 막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실망하고 낙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무서운 대적이 가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롱과 비웃음과 멸시를 통해서 우리를 흐트러뜨릴 경우도 있습니다.
악한 영은 더욱 교묘하게 죄인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게 우리의 길에서 실족하도록 미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길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주의 길을 굳게 지키는 것이 '부흥'입니다. 주의 길을 떠나서 커지고, 많아지고, 쎄진 것은 부흥이 아니라 타락이며 세속화입니다.
그리고 주의 길을 가는 사람은 주의 길에서 실족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길을 따라가고 그 길을 벗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실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길을 정하고 가다보면 더 쉬운길, 더 호감이 가는 길, 그런 미혹의 길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유일의 안전한 길은 하나님과 더불어 겸손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실족하지 않고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실족하다"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샬'입니다. "넘어지다, 쓰러지다, 비틀거리다, 실패하다, 무너지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걸려서 쓰러지다, 올무에 빠지다"의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이탈하고, 주님께서 주의하라고 표해 놓은 바로 그 일을 행하며, 악한 원칙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 등은 종종 우리 생애와 행동에 전적인 변질을 가져오게 하고야 맙니다.
오늘 본문에서 '실족, 카샬'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낙심이 오고 좌절이 와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이 실족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 어떤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실족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인간을 의뢰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와 우리의 힘들을 "우리의 팔"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의뢰함과 의지함은 생명으로 뜨거워진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걷는 발은 실족하지 않고 주님의 발과 포개져야 합니다.
신앙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주의 길을 가다가, 그 길에서 쓰러질수도 있지만, 그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가거나, 실족하면 아니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제아무리 자신이 가고자 하는 주의 길과 믿음의 걸음을 굳게 지키려 하여도?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주의 길을 가셨던 주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는 정말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길에 서서 실족하지 않고 그 길을 가고자 노력했다면, 그의 힘을 다하였을 때, 지처쓰러져서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갈 수 없는 경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뒷짐만 지시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를 도와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신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앞서 가시면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감으로써만 절대 안전하게 됨을 믿습니다. 그 길은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마음을 바쳐 그 길을 지키고 실족하지 않고 가다보면, 점점 더 명백해지고 더욱 밝아져서 완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길을 갈 때, 주의 길을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면 실족할 뻔한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그 상태에 내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곧 회복시켜 다시 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실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지킬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실족하지 않을만큼만 하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일하실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