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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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시 5:11~12)

유앙겔리온 2023. 2. 8. 13:34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
시 5:11~12

시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시5: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인생은 피난처를 찾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살인적인 생존경쟁을 하고 삶에 지칠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좋은 피난처를 찾게 되면 안정이 되고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피난처를 찾게 되면 기쁨이 아니라 도리어 근심걱정의 원천이 됩니다. 불행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피하다"는 의미를 가진 말들이 무수히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피한다"는 말은 부끄러운 일들로부터, 그리고 원수와 대적으로부터 내가 나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것을 내려 놓고 자신보다 더 큰 이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맡기는 것을 말함입니다. 

  우리는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피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피할 곳을 정해야 합니다.

  피난처가 필요할 때 어떤 사람은 여행이나 쉴만한 곳으로 찾아갑니다. 또 친정이나 친구 집으로 피신 가는 분도 있고, 스승을 찾아 하소연하거나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런 저런 이유로 온전한 피난처가 아니고 힘을 얻기는 역부족이며 잠시 잠깐의 미봉책일뿐 완전한 피난처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피난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안전지대를 세상에서 찾지 말고 지존자의 은밀하신 날개 아래 거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피난처를 찾아 피할 때는 시기와 때가 적절해야 합니다. 위기를 당하고 난 후에서 뒤늦게 피하려고 하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후가 됩니다. 그리고 피해도 소용없는 때가 오기도 합니다.  
 
  성경은 피할 곳을 주께 정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던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대신에 인생을 피난처로 삼고, 물질로 피난처를 삼고, 허망한 것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의 과정과 그 결말이 어떠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기자는 경건한 사람들이 환란 가운데 어떻게 주님께 피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삶의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인 다윗은 '주께 피하기로 작정하고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할 때 주님께로 피했습니다. 다른 아무 환경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주께로 피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왜 다윗은 피난처가 필요할 때 산으로도 피하지 않고, 사람에게로도, 칼이나 말로나 무기로도 피하지 아니하고, 주께 피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주께 피함이 기쁨이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세요.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내가 어려웠을 때 피하면 함께 어려워지고 위험할 것을 염려해서 부담스러워하고 꺼려합니다. 

  설혹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생은 결코 안전하고 완전한 피난처는 되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도리어 우리가 하나님께로 피하는 것을 기다리고 계시며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께로 피하는 것을 우리가 그분에게로 향한 믿음의 분량으로 여겨주시고 생각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주께 피하는 것은 주를 인정하는 것이며, 주를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과정과 결말은 기쁨충만일 뿐인 것입니다.   

  이것을 안 다윗은 그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마다 기쁨의 근원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품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이 기뻐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본문 11절 말씀 속에서 "기뻐하며, 기뻐 외치며, 즐거워하리이다." 등 총 세 번이나 즐거움에 넘치는 삶의 원리가 "주께 피하는데 있음"을 선포하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께 피하면 주께서 보호하십니다.
  여기 주의 '보호로'라는 말은 '사카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울타리 치다. 덮다. 막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주께 피하는 자에게 주님은 울타리가 되어주시고,그 날개로 덮으시며, 방패로 막아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인생을 헤치려고 하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헤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악한마귀사탄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그분께 단단히 자신을 묶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묶여 있는 한 그 어떤 폭풍우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 피난처에서 우리를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당신의 피난처로, 요새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내가 하나님를 피난처와 요새로 삼고 하나님께 피하였음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나를 호위하시리라"고 고백하고 간증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심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감정에 이끌리는 믿음 생활을 합니다. 그러니 늘 믿음이 출렁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출렁거리는 믿음에 함께 덩달아 주님의 사역과 주님의 교회가 출렁거리게 됩니다. 

  믿음을 감정 위에 세워서는 안됩니다. 감정적인 것들을 피난처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감정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요소를 피난처로 여기거나 피난처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둘려쌓이게 하지 마시고, 주의 은혜로 호위하여 주시기를 바라고 주께만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 피하는 자에게는 감정으로 호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주의 은혜로 호위해 주십니다.  

  다윗만 아니라 다윗같이 "주께 피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그와 같이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주께로 피하는 모든 우리 성도들에게 주께서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호위해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