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감사의 말씀을 인도하는 자(느 11:17~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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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씀을 인도하는 자(느 11:17~18)

유앙겔리온 2023. 2. 6. 20:41

감사의 말씀을 인도하는 자
느 11:17-18

느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느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여호와는 위로하신다'는 의미를 가진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B.C.464~423) 곁에서 왕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가장 권세 있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하나니와 두어 사람"으로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순간, 느혜미야는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일로 말미암아서 전혀 새로운 사명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닥사스다왕 제 20년인 주전 445년에 왕의 술맡은 관원장의 지위를 내려놓고 포로된 유다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총독으로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유댜와 예루살렘에서 그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좋은 선지자적 지도력을 보여준 사람이 되어주었습니다. 

  조건과 상황이 좋았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신앙을 회복하고 부흥시키고 개혁하는 일을 이루는 가운데" 지원과 지지만을 받으 것이 아나라 적대자와 시비자와 반대자들의 싸움과 갈등, 그리고 방해를 겪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고 섬기며 그분께 어떻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느헤미야 11장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거주지를 결정하고, 모두가 자신들의 할 일들을 맡아서 각자의 할 일을 감당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장에서 거룩한 성에 거하며 일하는 느혜미야의 관료조직 중에 특이한 관료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감사를 인도하는 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말씀 가운데에 아삽의 자손 중에 맛다냐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17절을 보세요.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맛다냐가 느혜미야 시대에 그 공동체에서 하는 역할이 감사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이는'감사 기도를 시작하는 우두머리' 혹은 '기도할 때에 감사를 시작하는 주동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맛다냐를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17절)라 했지만 이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개역성경에서는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라고 소개합니다.

  '감사의 우두머리, 감사의 주동자, 감사의 어른'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인도하는우두머리이며 주동자이며 어른들 입니까?

  기껏 원망과 불평을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며 주동자이며 어른이어서야 되겠습니까? 미움과 질투를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며 주동자이며 어른입니까? 짜증과 화를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며 주동자이며 어른은 아닙니까? 

  이런 주동자와 어른들만 있다면 이 세상은 온통 싸움터와 정신병원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한 시대에, 한 공동체에서 우두머리이고 주동자이고 어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며 주동자이며 어른들입니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며 주동자이며 어른들이 또한 되어야 합니까?

  느헤미야시대의 유다와 예루살렘은 희망을 열어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돌아온 느헤미야와 그와 마음을 같이한 사람들이 사역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들이 하려는 일을 대항해서 끊임없이 싸움과 갈등과 방해를 서슴치 않는 불신과 불안을 조장하려는 세력들이 넘치던 곳이었으며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 싸움은 치열했습니다. 

  그래서 절망의 한숨이 깊어갈 수도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느헤미야 시대를 희망차게 열어가도록 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감사를 인도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과 감사를 인도하는 주동자와 어른 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 살만한 곳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같은 상황에 처하거나, 같은 문제를 만나도 불평하고 원망으로 인도하고야 마는 우두머리와 주동자와 어른 들이 있는가 하면, 감사하며 기도할 뿐 아니라 감사를 이끄는 우두머리와 주동자와 어른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사를 인도하는 우두머리, 감사를 인도하는 주동자, 감사를 인도하는 어른이 가족공동체나 교회공동체나 민족 공동체에 있어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부의 상징이 되는 도시라면 그곳은 미국의 맨하탄일 것입니다. 세계의 부가 집중되고, 부의 상징이 되는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즐비합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그 맨하탄에는 도시를 확 비워두는 비움의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맨하탄의 자랑인 '센트럴파크'가 있습니다. 이 공원은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4km에 이르는 직사각형 모형의 공원입니다. 그 엄청나게 비싼 땅을 비워서 녹색식물과 물의 공원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이곳에 센트럴파크가 들어서게 되는데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맨하탄을 조성할 당시 맨하탄 도시를 디자인했던 사람인 '프레데릭 로 올름스테드는, 센트럴파크를 조성하는 것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던 당시 관계자들에게 "만약 이곳에 센트럴파크를 만들지 아니하면 이 만한 넚이에 해당하는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득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맨하탄에 센트럴파크가 없다면 그곳은 결코 부의 상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정신병자들로 가득한 도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돈과 마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빌딩이 덮은 도시에는 반드시 마음이 쉴 수 있는 마음을 위한 공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인생에도 감사가 없다면 아무리 삼층천을 경험하고 많은 은사를 체험하고 큰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신앙은 지차고 병든 신앙이 되고 맙니다. 인생에게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족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아는 예루살렘에 성벽을 건축하고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배치하고 성의 기능을 하도록 하기위해서 사람들을 배치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감사를 인도하는 관료를 세워서 감사를 찾아내고, 감사를 살려내고 검사를 주동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감사는 우두머리가 있어도 주동자가 있어도, 어른이 있어도 좋을 일입니다. 감사는 넘처날수록, 감사를 더하겠다고 다툴수록  범사에 인생을 아름답게 하고 유익하게 합니다.  

  복음적인 그리스도인,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맛다냐 처럼 감사를 찾아내서 감사를 이끄는 감사의 우두머리, 감사의 주동자, 감사의 어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