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더 기다리나니(시 130:5~8) 본문
더 기다리나니
시 130:5~8
시130: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130: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130: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시130: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오늘 우리가 본 시편 130편은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속을 바라고 부르짖는 시 편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후에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로 선정되었습니다.
사람은 사실상 어떤 형태로나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을 기다리고, 금년은 보다 나은 내년을 기다립니다.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기다 리고, 청년들은 꿈을 꾸며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기다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깊은 수렁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기다림은 많은 좋은 열매와 기쁨을 인생에게 가져다 줍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에 깊이가 없습니다. 물은 흐르나 표면만 흘러 버린 것과 같습니다. 물이 깊이 흡수되어야 생명이 자라나는데 표피만 적시고 넘쳐버리거나 흘려버린다면 생명의 풍성함은 없을 것입니다.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모든 깊은 수령에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의 은총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무방한 그런 하찮게 여겨도 좋을 것이 아닙니다. 기다린다는 사실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기다림으로서만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을 기다린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예수님을 다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실한 사람들, 남은자들, 이긴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만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다’ 말은 '카바'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기본 어근이 '함께 묶다' ‘기대하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대망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가다린다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묶어진 것처럼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무엇을 기다리면서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기다리는 것은 건강한 기다림의 영성이 아닌 것입니다.
성도가 인생살아가면서 무엇과 함께 묶여지고 연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함께 묶여 연합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셔야 합니다.
사단은 매우 적극적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묶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묶여진채로 자신에게 끌려다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주님과의 새로운 연합을 기대하며 주님과 연합하여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기다림에는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큰 고통 가운데서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많았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 깊은 수렁 가운데서도 그곳에서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의 기다림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인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그런 영혼은 주제 넘게 서두르거나 나태함에 빠져 죄를 짓거나 불신앙에 사로잡혀 절망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날마다 변합니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것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다 변할지라도 내 말 즉 주님의 복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묶여져 연합하여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의 기다림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의 기다림은 간절한 기다림의 상징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망대나 참호속에서 추위에 떨며 보초를 서는 사람이 날이 새기를 기다리고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파수꾼은 아침이 분명히 오는 것을 확신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채 어둡고 긴 밤을 지새우며 아침을 기다립니다.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오리라는 아침을 기다리고 분명히 오리라는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기자의 영혼은 파수꾼보다 더 간절하게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파수꾼이 추운 새벽을 이기고 아침을 기다리듯이 성도는 때가 될 때까지 인내로서 기다려야 합니다. 파수꾼의 심정보다 성도는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바라보며 기다리는 자는 파수꾼의 기다림보다 더 간절히 확신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파수꾼의 기다림보다 더 간절한 기다림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여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사도는 약 5:10~11절 말씀에서 "기다림의 본을 삼을 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과 욥의 오래 참고 기다린 것을 본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기다림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본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림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은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은총을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실상 무엇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까?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기다리는 이런 기다림이 없으면 어찌 참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것만을 기다리니 어지려워지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더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