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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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소망이 있나니(스 10:1~5)

유앙겔리온 2022. 12. 22. 17:23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에스라 10:1~5

스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스10: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스10:3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스10:4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스10: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며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만남으로 인해서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기가 막힌 상황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가리지 않고 닥칩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에스라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본다면 그만한 믿음을 가진 분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만큼 그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하려는 일은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에스라도 믿음이 뿌리채 흔들려 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기가 막혀 주져 앉아버렸습니다. 

  누구나 자기 믿음으로 감당할만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능력 이상의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되면,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에스라와 같이 기가 막혀 주저 앉게 되는 일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교회다닌지 오래되었다고 성경을 많이 읽고 썼으니 나는 예외일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볼 때 믿음이 좋아보인다고 기가 막힐 상황이 닥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흔들릴 수 있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흔들린다고 절망한다고 그것이 끝이 아닌 것입니다. 

  에스라는 포로로 끌려간 땅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꿈을 안고 돌아온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족속들의 형편은 70년 전 포로가 될 때와 달라진게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7족속의 가증한 행위에서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섞여서는 안 될 것에 섞여 있었습니다. 오히려 떠나야 할 것에서 떠나지 않았고 섞이지 말아야 할 것에 섞여 있었습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방백들과 고관들은 뒤섞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떠날 것을 떠나지 않고 섞여서는 안 될 것에 섞여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만한 사람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앞장 서서 그들 가운데 섞여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이런 일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기각 막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낯이 뜨거워 하나님 앞에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가 막히고 낯이 뜨거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주저 앉아 울며 기도하고 있던 에스라에게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 선지자가 다가와 "우리에겐 오히려 소망이 있사오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이 일은 당신의 주장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기가 막히고 낯이 뜨거워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던 에스라를 일어나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스가냐였습니다. 

  스가냐선지자는 성경에서 괄목하고 주목할만한 그런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짧게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에스라를 일으켜 세워서 에스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려고 했던 일을 이루게 한 놀라운 사람이있습니다.   
  
  스가냐의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에스라를 비난하고 나설수도 있었습니다. 그 연약성을 꼬집고 "멧집이 그것 밖에 되지 않느냐,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그럴줄 모르고 시작했단 말인가, 참 순진하기도 하지" 라는 둥,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냐는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오늘 본문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에스라에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끝이라고 생각할 만큼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증한 가나안 백성들의 행위를 본받아서 살고 있으며, 그들과 통혼하는 가운데 있지만 전혀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제라도 돌려 놓을 수 있사오니 그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행하소서.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그런데 스가냐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자신이 앞장선다는 것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버지가 연루되어 있는 자기 집의 일이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 스가냐가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엘람 자손은 1차 귀환에서 1,254명이 귀환했고(스2:7), 2차로 에스라와 함께 70명이 귀환했습니다(스8:7). 1차 귀환자 1,254명 중에서 스가냐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6명이 이방 여인과 혼인한 자의 명단에 오른 것입니다.

에스라 10:26절을 보십시오. "엘람 자손 중에서는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요"

  스가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아버지가 종교개혁의 대상자인 셈입니다. 그런데 스가냐는 에스라에게 "이 일을 힘써 행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돕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마음" 곧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입니다.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에스라를 기여히 일으켜 세워놓았습니다. 이것이 스가냐가 한 일입니다. 

  에스라의 그 놀라운 개혁의 성공은 보이지 않을만큼 살짝 등장하고 사라진 스가냐였지만 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드디어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백성들을 대신하여 죄를 자복하며 눈물로 중보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던 에스라가 일어났습니다. "오히려 소망을 주는 자"인 스가냐의 말에 힘과 용기를 얻고 일어났습니다.

  스가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스가냐의 역할을 할만한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비난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발뻗고 주저 앉아 우는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사오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스가냐 소명'을 받은 이들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