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송축의 골짜기(대하 20:26~30) 본문
송축의 골짜기
대하 20:26~30
대하20:26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대하20:27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대하20:28 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대하20: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대하20: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브라가 골짜기 즉 송축의 골짜기는 유대나라 7대 왕인 여호사밧과 그 백성들이 모압자손과 암몬자손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하여 침공해 왔을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전쟁터에 붙여준 "신앙고백적이름"입니다.
이 브라가 골짜기는 여호사밧과 그 백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브라가 골짜기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축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브라가 골짜기를 유다백성들이 언제까지라도 기억하도록 이름을 붙이고 이 골짜기의 이야기를 기록해 둔 것입니다.
브라가 골짜기의 전쟁은 드고아 전쟁이라고 불리는데 아합이 왕으로 재임하고 있던 북이스라엘과는 달리 남유다는 여호사밧이 선정을 배풀고 백성들은 평안을 누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만하면 됬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에 모압자손과 암몬자손과 마온 사람들이 유다나라를 치려고 올라온 것입니다. 균형을 깨고, 평온을 흩트는 일을 도발한 것입니다.
이 골짜기는 일회적으로 여호사밧과 그 군대에게만 주어진 골짜기가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모든 나라와 민족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는 골짜기 입니다.
영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골짜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골짜기입니다.
여호사밧은 모압자손과 암몬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연합하여 자신이 통치하고 있던 나라와 민족을 치고자 바다 저쪽 아람에서부터 와서 지금은 하사손다말 즉 엔게디에 까지 왔다는 전령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엔게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하루만 더 달려오면 유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직면한 여호사밧왕의 반응과 자세가 오늘의 말씀 묵상 포인트입니다.
하사손다말은 엔게디라고도 하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다니면서 시편을 기록했던 유대광야 지역을 말합니다. 다윗의 길을 쫓아 정직하게 행하는 믿음의 사람왕들이라고 하면,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하면 이 일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여호사밧왕은 엔게디에 진치고 있는 연합군대의 위협 앞에서 그 군대의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이 동맹군들을 대항할 능력, 물리칠 능력이 전무하다는 데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두려워 하여"라고 했습니다. 놀람과 두려움이 엄습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이런 놀람과 두려움이 엄습한 상황 앞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를 치려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어떻게 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했습니다.
다윗도 주만 바라보면서 수 많은 위기를 극복했음을 시편을 통해서 여러곳에서 고백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다윗의 길을 사모했고 그 길을 따르고자 했던 여호사밧도 주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친히 여호와께 낯을 향하여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온 유다백성들에게 금식하라 공포했습니다. 그러자 유다 모든 성읍에서 백성들이 모여와서 여호사밧왕과 함께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이 때 13절에 보면 유다 모든 사람들이 각성읍에서 나올 때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했습니다.
사람들이 아내들도 데리고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자녀와 어린이들도 데리고 나아와 기도했습니다.
여호사밧이 회중 가운데 서서 기도회를 이끌어가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생각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레위사람 야하시엘이란 선지자를 세우셔서 그 금식과 기도와 간구함에 응답해주셨습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의 전쟁이 아니라 나 여호와의 전쟁이라"하셨습니다.
여호와사밧은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노래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 찬송을 인도하는 사람들을 세워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전쟁에 임하게 했습니다.
찬양 소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을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벌떼처럼 몰려오던 세 나라 연합군들을 하나님이 친히 복병을 두어 싸워주시므로 여호사밧의 군대가 손 하나 대지 않았는데도 그들을 다 물리쳐주신 것입니다.
유다를 치러왔던 그 많은 적군들이 그날의 전쟁에서 피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전쟁터에 남겨놓은 물건들을 모아 옮기는데만 해도 사흘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며 찬송하지 아니하겠습니까? 26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그 골짜기가 "브라가 골짜기"였습니다. 이곳에서 유다백성들이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송축의 골짜기" 즉 브라가 골자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만 바라보는 믿음의 백성들의 찬양은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크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깊은 옥 중에서 찬양과 기도할 때 옥문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결코 쉽지 않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을 알고 믿어 구원의 길에 들어선 것은 정말 다행이고 기쁜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들어섰다고 해서 그냥 평안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눈물 골짜기는 계속됩니다. 육신이 숨쉬고 살아가는 인생에게 걱정근심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 육신의 옷을 벗어버려야 비로소 영적 전쟁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절대로, 결코 눈 앞의 상황을 바라보며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 시대에 유다 백성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자식들과 어린아이까지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눈물골짜를 갈지라도, 위기를 만나서 두려워하는 가운데 있을지라도,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고 유다백성들처럼, 주만 바라는 자들에게, 주님께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는 이들에게, 주를 찬송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송축의 골짜기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