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큰 일을 행하셨으니(시 126:1~6) 본문
큰 일을 행하셨으니
시편 126:1~6
찬 93, 337
시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시126: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시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내일이 77번째 맞는 우리 대한민국의 8,15 광복절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한국교회는 오늘 주일을 맞아 광복절기념주일로 지킵니다. 광복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하여 행하신 큰 일이셨습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날 한국은 해방을 아는 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해방, 광복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리 민족이 자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요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안됩니다. 은혜를 헛되이 여기면 안됩니다. 그러면 또 똑같은 수치스러운 일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광복절 경험과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다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포로되어 잡혀간지 70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해방과 자유를 간절히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능력 밖의 '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막연히 바라만보고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작이 바사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낼뿐 아니라 그곳에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벨론시대에 빼았아온 성전의 금은 그릇들까지 되돌려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바사(페르시아)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보았을 때 최고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뭐가 꿀리는 데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유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자기의 나라로 돌려 보내준 것입니다.
이 일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안이 벙범한 가운데서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유다백성들의 입술을 통해서 오늘 본문 말씀에 고백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셨습니까?
그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두 번씩이나 반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은 누가 위협하고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직점 경험하고 체험한 자로써 스스로 입을 열어 증거하고 간증하고 찬송하는 바였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은 그것을 경험하는 유다백성들에게 얼마나 기이하고 갑작스러운 일이었는지 마치 "꿈꾸는 것 같았도다"할 정도였습니다. 꿈에나 있을 일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해방된 것 같이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의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갑작스러운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해방의 소식을 일컬어 함석헌 씨는 <뜻으로 본 한국 역사>(한길사)에서 "도둑같이 온 해방"이요, "하늘이 준 떡"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의 시각과 한치의 차이도 없습니다. 그것은 꿈꾸는 것 같은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꿈꾸는 것과 같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 일"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로 인하여 오늘 본문 말씀은 "유다 백성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해주신 큰 일로 말미암아 한마디로 입이 귀에 걸릴 만큼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가득하다" "찼다"라는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시적인 용어인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웃으려고 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노래하려고 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터져나오는 웃음이며 찬송입니다.
포로된 백성들은 웃음과 찬양과 기쁨을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입만 열면 신음과 탄식과 원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음과 탄식의 소리는 사라지고 웃음과 찬양과 기쁨이 터져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주변의 국가들이나, 이스라엘에게는 "크고 기이한 일이었을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크고 기이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슥8:4~6절 말씀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들짐승의 놀이터가된 예루살렘의 부흥을 말해주는 내용으로서 이와같은 일은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없이는 상상할수도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큰 일도, 기이한 일도 결코 큰 일일 수 없고, 기이한 일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런 일을 이루실 수 있는 크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하기에 "씨를 뿌리는 자"가 될 것을 명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꿈꾸는 것과 같은 일들이 얼마나든지 하나님 안에서 가능하다. 입이 귀에 걸리는 듯한 기쁨과 찬양의 순간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그 어떤 기이한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시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단회성이 아닌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믿음을 가지고 어떤 경우, 어떤 상황속에서도 씨를 뿌리려 나가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고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풍세를 의지하는 사람은 파종하지 못하고,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지만"(전 11:4) 크신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뿌린대로 거두게 될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바벨론 시대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바벨론의 부흥을 바라는 이들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안보와 안녕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 세계의 전쟁 소식, 암울한 경제 전망, 신냉전시대의 출현, 이전에 듣도 보지도 못했던 온갖 질병 등과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이스라엘을 삼켰던 바벨론이 될 수 있고, 우리를 삼켰던 제2의 일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일을 행하셔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꿈꾸는 것과 같고, 입이 귀에 걸리는 것과 같은 큰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큰 일을 잘 지켜낼 수 있는 성도와 교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크고 기이한 일을 얼마든지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